아버지 평생 담을 쌓아 올리는 동안
세상의 끄트머리에는 자주 격문이 나붙었다
마루 끝에 서서
목 하나 만큼 발을 곧추세우고 밖을 살폈다
물결이 더 세게 다가왔다 스러져가고
환한 그늘이 깔린 뒤란에는
비가 내리곤 했다
대추나무 감나무 아래서
아령을 들고 키를 키운 만길이 형은
어느 봄날
한 여자의 담장이 되어 떠나고 나는
감나무 가지에 올라
붉은 격문이 팔랑거리는
알록달록한 세상의 하체를 보았다
거기도 달이 지나는 길과
새들이 찍고 가는 울음의 무늬들
촘촘히 박힌 누운 담이
물 치는 마을을 뺑뺑 돌고 있다
김만수
우리들 삶의 구체적인 현실을 시로 보여주는 김만수 시인의 작품입니다. 이 시에서는 담을 통해 아이가 세상을 알아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네요. 그래서 짧은 성장소설처럼 읽힙니다.
담이란 자주 격문이 나붙는 험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이런 담을 쌓지요. 만길이 형도 그런 아버지 역할을 할 나이가 되자 새로운 담을 쌓으러 떠나간 것이고요.
담은 늘 그 너머의 세상을 궁금하게 하지요. 그래서 우리는 늘 발을 곧추세우고 밖을 기웃거립니다. 그러나 깨달은 것은 세상이란 겹겹의 담으로 둘러싸인 곳이란 사실. 성장은 바로 이런 담을 하나씩 넘어서 나아가는 것이겠지요. 새가 알을 깨고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것처럼. 그리고 우리 앞에 담이 있다는 것은 아직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의미겠지요.
시인.경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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