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은 '폭력적'이라는 언설이 있습니다. 생명체들은 저마다 삶에 대한 의지가 필사적이며, 그 의지의 발현은 다른 생명체에게 치명적인 폭력이 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아침에 먹은 음식도 따지고 보면 무자비한 폭력의 과정을 거쳐 살육된 것입니다.
참으로 무섭고 잔인하며 억센 것이 생명입니다. 따라서 한 생명이 다른 생명을 대할 때, 철학자 김용석은 아름다움, 그리움, 사랑 등의 미학적 인식보다 우선 진정으로 조심(操心)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조심한다는 것은 마음을 써서 주의하고 세심하게 배려하며 진심으로 존중한다는 뜻으로, 이 명제의 실천이야말로 생명 존중'생명 사랑'생명 살림의 출발점이 된다고 봅니다.
세밑의 중학생 자살사건을 비롯하여 곳곳에서 드러나는 학교폭력의 실상이 우리를 경악케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간 교육을 한답시고 교육행정기관과 학교와 가정과 사회가 힘을 합쳐, 우리 학생들로 하여금 타인을 대할 때 마음을 써서 조심하고 배려하기는커녕, 이웃의 아픔에 차돌처럼 눈귀가 멀고, 시멘트바닥처럼 잔인하며, 목숨을 하찮게 여기도록 하는 내용을 잠재적 교육과정으로 가르쳐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듭니다.
폭력 유발에 관한 생쥐실험이 있습니다. 우리 바닥에 전류 흐름 장치를 해놓고 전류자극 빈도를 계속 높이면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한 생쥐들이 동료 중에서 가장 연약한 놈을 골라 집단으로 공격을 한답니다. 이 실험의 전기 자극처럼, 학생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날려대는 주범은 아마도 억지 공부와 시험성적에 대한 압박일 겁니다. 다음 토막글은 어느 학생이 국민교육헌장을 패러디한 것의 일부입니다.
"영악한 마음과 빈약한 몸으로 시험의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무시하고 우리의 성적만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아 찍기의 힘과 눈치의 정신을 기른다. 시기심과 배타심을 앞세우며 능률적 찍기의 기술을 숭상하고 메마르고 살벌한 경쟁정신을 드높인다."
구절구절 시험에 찌들은 학생들의 악다구니가 무논에 가득한 개구리 울음처럼 들려오는 곳, 이곳이 우리네 학교 교실이니까요.
생각해보면, 시험 성적을 과목별 가로 세로 평균을 내고, 학급'학년 단위로 석차를 적은 성적표를 어린 학생들의 손에 들려주는 행위는, 그들의 생명현상에 대해 조심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결코 아닐 것입니다. 그 평균점수라는 것도, 그 학생의 키, 몸무게, 가슴둘레, 앉은키 등의 수치를 합산하여 산술적으로 나눈 것과 한 치도 다를 바 없는 눈먼 수치인데, 이것으로 온갖 가능성이 열려 있는 학생의 전모를 평가하는 것은 어린 생명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그리고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만 하더라도, 시험점수 순위에 따라 전국 학교를 일렬종대로 세워 발표하는데, 교육의 건전성까지 평가하려면 학생들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나 학업에 대한 흥미도, 공부하는 즐거움의 정도 등도 함께 평가하여, 성적은 우수하나 이 정의적 영역의 수치가 밑바닥인 학교에는 상을 내릴 게 아니라 평생공부의 기초공사를 부실하게 했다는 책임을 물어 경고카드를 꺼내 보여야 하지 않을까요. 보나마나 억지공부로 학생들의 성정을 마구 구겨댔을 확률이 높을 테니까요.
그리고 학생들의 시험점수가 교사 평가의 주요항목이 되고, 점수 높이기에 대한 윗선의 압박이라도 받게 되면, 교사들의 가르칠 내용에 대한 해석은 물론 가르치는 방법, 가르치는 자세, 학생을 바라보는 시선 등이 변질될 확률도 높아집니다. 예를 들어 교실에서 '빛의 성질'을 가르친다고 할 때, 그 성질로 인한 과학적 현상을 깨닫고 삼라만상을 바라볼 줄 아는 인간적 안목을 기르기보다 이 내용이 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내용인가, 또 출제된다면 어떤 유형으로 출제되는가 요모조모 검토하고는, "직반굴, 직진'반사'굴절, 알지? 외워!" 하는 식으로 지도하게 되지요. 바로 이 상황에서 실종되는 것이 인성교육입니다. 이렇게 배움의 질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삼류 교육으로는 학생들의 생애를 건강하게 열어줄 수가 없습니다.
또한, 자녀의 가능성을 고민하고 그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려는 노력보다 어떤 입시도 뚫을 수 있는 시험능력에 집착하여 무지막지하게 다그치는 학부모들의 태도 또한 어린 생명에 대해 조심하고 배려하는 자세와 거리가 멀고 또 멉니다. 저녁 늦게까지 학원가로 아이를 내몰거나 시험을 앞두고는 아예 문제집 속에 아이를 가두고 잠을 못 자게 하는 어머니들의 극성은, 아이들의 성적은 일시적으로 높일지 몰라도 그 성적보다 몇 배 더 깊이 상처를 내고 또 몇 배 더 높이 스트레스를 치솟게 할 것입니다.
현재 각계각층에서 분주하게 논의되고 있는 학교폭력 예방 및 근절 대책들, 그 속에는 무엇보다도 어린 생명 앞에서 진정으로 마음을 써서 주의하고 세심하게 배려하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진하게 깔려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이게 생명 살림교육의 출발점이니까요.
김동국/시인.대구두산초등학교장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