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에 대한 비판인데…

입력 2012-01-28 08:00:00

부자들의 대통령/미셸 팽송'모니크 팽송 지음/장행훈 옮김/프리뷰 펴냄

"계급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현실이다. 하지만 이 전쟁을 주도하는 것은 내가 속해 있는 부자 계급이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이기고 있다."

세계 최고 부자 중 한 명인 워런 버핏은 계급갈등에 관한 자기 생각을 아주 솔직하게 말했다. '솔직한' 부자를 보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2007년 특급호텔에서 성대한 잔치 겸 전략회의가 열렸다. 대통령 당선 축하 모임 자리였다. 이번 선거는 대기업과 언론사 사주, 정치인, 유명 연예계 스타와 스포츠 스타들의 승리이기도 했다.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명사들이 자리한 이 모임의 참석자들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돈 많은 부자들이라는 것과 대통령 당선자가 ○○시장 때부터 관계를 맺어온 오랜 친구들이라는 점이다.

이후 신임 대통령은 오랜 친구들(?)에게 풍성한 선물을 나누어 주었다. 상징적인 선물로는 훈장을 듬뿍 수여했고, 금전적으로는 새로 도입한 조세상한선을 넘어서는 부분에 대해 세금환급과 상속세를 면제해 주었다. 또 정부와 공기업의 전략적 요직에 친구들(?)을 임명했다. 우회적 방법도 사용했다. 공영방송의 광고를 폐지함으로써 광고 수입이 친구들이 사주인 민영방송으로 흘러가도록 길을 터주었다.

부자들의 대통령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10계명이 있다. 첫째, 재벌 오너들과 친구로 지내라. 둘째, 세금으로 부자들을 지켜라. 셋째, 누가 뭐래도 측근을 챙겨라. 넷째, 공과 사를 구별 말라. 다섯째, 검찰을 권력의 하수인으로 만들어라. 여섯째, 권력은 소수 엘리트의 손에 맡겨라. 일곱째, 언론을 장악하라. 여덟째, 토목으로 승부하라. 아홉째, 부자동네에 투자하라. 그리고 마지막, 이념은 상관 말라 정권만 지키면 된다.

2007~2012년 사이의 대한민국 이야기가 아니다. 2007년 프랑스와 한국에서는 똑같이 부자들의 대통령이 탄생했다. 사르코지와 이명박 두 사람은 후보시절 국민들에게 부자가 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들이 부자가 되기 위해 거쳐 간 길로 국민들을 인도해 줄지 모른다는 기대감과 그들의 삶의 맥락이 지니는 유난스런 박진감은 국민들로 하여금 도박의 길을 걷게 했다.

그러나 그들이 한 약속 속에 '주어'가 분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부자였던 극소수의 사람들은 더 큰 부자가 되었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더욱더 심각한 생활고에 빠져 삶이 악화되어 갔다.

이 책은 25년 전부터 부자들의 행태를 연구해 온 프랑스 사회학자 부부가 부자들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집행하는 대통령 사르코지의 행적을 기록한 사회학적 보고서이다. 국립사회과학연구소에서 연구생활을 계속해 왔고, 주요 저서로 '고급 주택가' '부르주아 지역과 기업 지역' '대부호와 가족왕조' '부유층 사회 여행일지' '새 기업주들과 신생왕조' '파리의 사회학' 등의 저서가 있다.

정권이 공유하고 있는 DNA 탓일까. 사르코지에 대한 이 책의 비판은 나라와 대통령의 이름만 우리 것으로 바꾸면 거의 그대로 들어맞는다. 소수 부자집단이 자기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단결하고 있는지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우롱하는 소수 과두정권의 월권에 저항하고, 이러한 소수 정권이 지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일반시민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 처방까지 이 책은 제시하고 있다. 248쪽, 1만4천500원.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