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네 살림 배려한 안채, 사랑채보다 한단 높게 지어
구미 해평면 해평리 쌍암고택(雙巖古宅).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300여 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회나무가 한눈에도 '고택이 있을 법한 동네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앞으로는 넓은 낙동강이 흐르고 뒤로는 얕은 산이 버티고 있는 것이 한없이 아늑해 보인다.
조용한 고택마루에 앉아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와 맑은 공기를 가슴 깊이 마시고, 하늘에 가득한 별들과 교감하면서 세속에 찌든 영혼을 깨끗이 할 수 있는 곳이 쌍암고택이다.
쌍암고택은 전주 최씨 후손들이 살아오면서 동학운동과 태평양전쟁,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 영욕의 세월을 견디면서 역사의 뿌리와 같이해 오고 있다.
99칸의 웅장하고 화려한 저택은 아니지만 선비의 기상을 올곧이 담고도 남을 품격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전주 최씨 혼이 담긴 고택
쌍암고택(중요민속문화재 제105호)은 대문 앞에 커다란 바위 두 개가 떡 버티고 있다고 해서 쌍암고가라고 했다. 바위 하나는 새로운 집이 지어지면서 주춧돌로 쓰였고, 하나는 담벼락으로 변해 지금은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이곳은 전주 최씨의 혼이 담겨 세월 속에 유유히 전해내려오고 있다.
쌍암고택은 검재(儉齋) 최수지(崔水智) 선생의 후손인 최광익(崔光翊) 선생이 1731년(영조 7)에 아들의 살림집으로 지은 것이라 전해진다.
쌍암고택은 최광익의 아들 6형제 가운데 넷째 아들이 사용했던 집이다. 쌍암고택 바로 맞은편에는 북애고택(北厓古宅'경북민속자료 제41호)이 자리하고 있다. 북애고택은 형이 동생의 살림집을 북쪽 언덕에 지어주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형제가 서로 마주 보고 두터운 정을 나누며 정겹게 지냈을 것을 생각하니 한없이 흐뭇해진다.
쌍암고택은 1979년 12월, 북애고택은 1983년 6월에 각각 중요민속문화재와 경상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됐다.
동서로 긴 대지에 앞에서부터 대문채, 사랑채, 중문간채, 안채, 사당을 차례로 배치했다.
이곳은 현재 종 9대손인 최열(77) 선생과 부인 강계희(73) 씨가 지키고 있다.
쌍암고택은 당초 이 마을에 모두 9채가 있었다. 그러나 1894년 동학운동과 1941년 태평양전쟁,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7채가 소실되고 2채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동학운동 때는 관군의 눈을 피해 집을 비우고 피란을 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들이 고택에 머물면서 넓은 해평들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쌀을 강제로 징수해 인근에 있는 낙동강변 강창나루를 통해 일본으로 실어나르는 창고 역할을 했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엔 고택들이 여러 채 남아 있었고, 이곳 쌍암고택에도 몇몇 건물이 더 있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지금 문간채의 대문이 평대문으로 바뀌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솟을대문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세 번의 난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쌍암고택은 제대로 손길을 받지 못해 일부는 무너지고 소실되면서 겨우 명맥만 이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ㄷ'자형의 독특한 건축양식
쌍암고택의 건축양식은 다른 고택과는 좀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사랑채만이 남서향으로 배치돼 있고, 나머지 건물들은 동향이다. 동향으로 집을 앉힌 것은 뒷산에서 내려오는 산맥이 동쪽으로 뻗어 있어 지형에 따라 집을 지은 것이다. 그러나 사랑채는 안채와 떨어져 기단을 높여 남향으로 지었으며 통풍이 잘 되도록 했다.
안채는 'ㅡ'자형의 안대문채를 마주하고 'ㄷ'자형으로 자리 잡고 있다. 6칸 규모의 대청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에는 안방과 부엌이 있고. 왼쪽으로는 비교적 큰 윗방 아래로 방과 부엌이 있다. 다른 고택들과 다르게 이 집 안채의 안방과 건넌방 문앞에 모두 긴 쪽마루로 연결돼 있어 어느 공간이든 편하게 들어갈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넓은 대청의 한쪽 윗벽에 긴 시렁과 앞 기둥에 부착된 5단 탁자형 시렁이 있다. 자주 쓰는 살림살이나 다양한 도구, 세면도구 등을 얹을 수 있는 수납공간 역할을 하는 아주 보기 드문 시설이다. 최열 선생의 안내를 받으며 집안을 둘러보다 잠시 따스한 볕이 들어 편안하고 아늑한 대청에 앉았다.
쌍암고택의 독특한 건축양식은 여인네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한 건축이다.
여인들의 공간인 안채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한쪽으로 살짝 비껴 낸 안 대문채의 대문을 통해 사랑채로 내려간다. 여느 고택과는 다르게 쌍암고택의 사랑채는 안마당의 구역에서 분리되어 따로 배치돼 있다. 그것도 안채보다 한단 정도 더 낮게 지어진 것. 정남향의 사랑채는 대청과 큰 사랑방, 골방, 온돌방이 있으며 팔작기와집이다. 4칸의 큰 사랑대청, 대청 안쪽 2칸은 조금 높게 마루를 깔아 위계를 두었고 그 한쪽에 분합문을 단 제사와 상례를 위한 제청이 있다. 사랑채를 버티고 있는 기둥들이 모두 둥근 통나무로 지어졌다. 사랑채는 주로 바깥주인이 거처하면서 외부의 손님들을 접대하는 생활공간이기 때문에 그 집안의 가풍이나 자랑거리가 하나쯤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루 위의 벽면에 걸린 현판을 유심히 보니 효사와(孝思窩)라고 쓰여 있었다. 효사와는 '부모님을 공경하는 마음을 한시라도 잊지 말라'는 의미를 담았다.
천장을 가로지르는 구불구불한 자연 그대로의 대들보도 무척 인상적이다. 그런데 지붕 모양을 유심히 살펴보다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다른 곳에서는 본적이 없는 특이한 것이 있었다. 지붕을 받치고 있는 작은 기둥 끝에 문고리가 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문고리가 지붕을 받치고 있는 작은 기둥에 마루로 올라가는 돌계단과 수직이 되도록 양쪽으로 2개가 달려 있었다. 손님들 중에는 연세가 많은 분들도 계신데 마루 앞의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기가 불편해 다칠 수도 있기 때문에 지붕 위에 달려 있는 문고리에 줄을 달아 늘어뜨려 몸이 불편하거나 연로하신 분들이 줄을 의지해 편안하게 계단을 오르게 하는 특수 장치였다는 것이다.
사랑방으로 들어간 최열 선생은 벽장으로 보이는 마루 하나를 들어올린다. 손잡이를 들어올리자 보물창고와 같은 작은 공간이 나타났다. "이곳에 조상들의 문서나 귀한 책들을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안채 옆을 돌아 밖으로 나와 보니 제일 뒤쪽에 사당이 자리 잡고 있다. 사당 옆에는 회나무가 서 있다. 사당은 전면에 툇간을 두고 그 뒤편 3칸 모두 아주 높은 굽널을 들인 장자살문을 달았다. 막돌 초석 위에 방주를 세운 홑처마 맞배지붕 집이다.
사당은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인데, 최열 선생의 이야기로는 이 집이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는 바람에 후손으로서 자랑스러움도 있지만 제사를 지내는 일은 여간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쌍암고택이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강'절도가 빈번했다고 한다. 문화재로 지정만 됐지 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보안장치는 전혀 없었다. 최열 선생 부부는 강도를 당해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고 하니 문화재보호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안동국시의 원조격인 손칼국수
27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전주 최씨 종부의 손길은 집안 곳곳에서 묻어난다. 강계희 씨는 50년 동안 종부로 살아왔다. 쌍암고택의 오랜 역사와 함께 대를 이어오면서 어느덧 칠순을 훌쩍 넘긴 종갓집 며느리의 삶. 고단하고 힘들었을 법한데도 "힘들었다"는 말 한마디 없다.
쌍암고택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 음식은 안동국시의 원조격인 손칼국수. 안동국시보다 더 가늘게 삶아내는 손칼국수는 반죽과 국물에 그 비법이 있다고 한다.
옛날 한여름에 소, 염소 등을 잡아 고기를 집안 한쪽에 매달아 놓는다고 한다. 고기가 부패하면서 생긴 구더기들이 땅으로 떨어지면 구더기를 먹고 살이 토실토실 오른 토종닭을 잡아 뼈와 살을 국물로 우려낸다. 또 밀을 아주 곱게 빻아 바람에 날려 멀리 날아간 고운 가루를 반죽해 가늘게 손칼국수를 만들어 삶아낸다. 강 씨는 그 맛이 일품이라고 자랑한다.
◆인근 관광지
쌍암고택 인근에는 해동 최초 가람으로 신라 불법의 초전 법륜지인 도리사가 있다. 도리사에는 보물 470호인 도리사 화엄석탑이 있으며,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하러 올 때 모셔온 세존 진신사리가 담긴 금동육각사리함(金銅六角舍利函)이 발견돼 성지화됐다.
또 천혜의 해평습지가 넓게 분포돼 겨울 진객인 흑두루미와 재두루미 등 천연기념물들을 볼 수 있는 철새도래지가 있으며, 상류 쪽에는 4대강 공사의 걸작품인 구미보가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300여 개의 낙산고분군, 숭신산성, 보천사, 의구총, 낙봉서원 등 각종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승용차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동양 최대 규모의 유리온실에서 4계절 내 스프레이 국화를 생산하는 구미원예수출공사와 승마장, 옥성자연휴양림 등이 있어 1박 2일 여행 코스로도 좋다.
구미'전병용기자 yong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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