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책 너머 50m만 더 가면 할아버지 산소인데..

입력 2012-01-21 18:38:48

철책 너머 50m만 더 가면 할아버지 산소인데..

"남방한계선 철책에서 50m만 더 가면 바로 할아버지 산소가 있고 그 너머에는 어머니 산소가 있는데 여태 가보질 못했어.."

설을 앞두고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백학산 정상 남방한계선을 찾은 박래은(76)씨는 묵묵히 북녘 땅만 바라봤다. 눈가가 어느덧 촉촉해졌다.

박씨는 백학산 아래 비무장지대가 고향이다. 철책만 넘어가면 곧바로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그는 명절이면 가족과 함께 철책 앞에서 간단히 성묘한다. 그 곳에 할아버지 산소와 어머니 산소가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산소는 50m 바로 코 앞에 있다. 그러나 반세기 이상 울창하게 자란 나무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박씨는 지척에 두고도 고향에 갈 수 없는 자신의 처지 같다고 했다.

박씨가 고향을 떠나온 것은 1·4 후퇴 직전인 1950년 12월. 당시 마을에 소개령이 내려지면서 1955년 작고한 아버지와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다.

'5~6개월만 떠나 있으면 된다'는 군인 말을 믿었다. 그게 60여년이 됐다.

외아들인 박씨는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남아 있다.

박씨의 어머니는 1950년 7월 병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해 겨울 고향을 떠나온 박씨는 여태 어머니 산소를 한번도 찾지 못했다.

박씨는 전쟁이 한창인 때라 어머니 사진 한 장 챙기지 못했다.

박씨는 2002년 실향민 59가구가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북쪽에 조성한 해마루촌에 정착했다. 고향과는 2~3㎞ 떨어진 곳이다.

고향이 너무 그리워 향수를 달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박씨는 "20년 전 처음 철책을 찾았을 땐 어머니 산소라도 볼 수 있을까 기대를 많이 했다"며 "하지만 돌보는 사람이 없고 중간에 나무까지 빼곡히 들어차 산소를 볼 수는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박씨의 소망은 하나다. 남북간 왕래가 이뤄져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고향 땅에 가보는 것이다.

박씨는 "산 아래에 조상묘 100여 기가 흩어져 있다"며 "죽기 전에 통일이 돼 조상묘를 모두 찾아 한 곳에 모시고 성묘하는 게 가장 큰 바람"이라고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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