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남도 헛갈릴 설 명절 애매한 것들
설 명절 애정남! 정해주세요!
설 연휴가 시작됐습니다. 민족 최대의 명절을 맞아 벌써 고속도로와 국도는 차들로 북새통을 이루지만 부모님께 드릴 선물 한 아름 안고 고향을 찾는 마음은 벌써부터 따뜻해지죠.
하지만 명절을 보내는 일이 쉽진 않습니다. 금전 지출에다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가족과의 관계도 서로 조심하고 배려해야 할 부분입니다. 애매한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 명절. 이럴 땐 개그콘서트의 '애정남'이 나타나 명쾌하게 정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요고 참 애매~~~ 합니다. 우리 애정남에서 정해드립니다~~~. 이렇게 정한 거예요~"라고.
◆설날 세뱃돈 몇 살까지? 얼마나?
사촌형제만 7명인 김성호(44) 씨는 설 명절마다 세뱃돈 부담에 허리가 휜다. 사촌형제들이 모두 모이면 조카들은 20명에 육박한다. 이제 갓 돌을 넘긴 아이부터 대학생까지 연령대도 천차만별이다. 1만원씩만 쥐여줘도 20만원이지만 그렇다고 대학생까지 1만원짜리 한 장을 달랑 내밀 수는 없어 보통 30만~40만원 이상이 세뱃돈으로 지출되는 것. 그렇다고 유치원생이라고 해서 1천원이나 5천원짜리를 쥐여주기도 손부끄럽다. 워낙 물가 인플레이션이 심하다 보니 천원 단위는 코흘리개들조차 하찮게 생각하는데다, 지켜보는 사촌형제들의 눈초리를 생각하면 형평성을 맞출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김 씨는 "나는 중학생 딸 하나밖에 없다 보니 우리 아이가 받는 세뱃돈에 비해 나가는 지출이 너무 많아 손해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다고 액수를 너무 낮출 수도 없어 늘 난감하다"고 푸념했다.
고등학생 이준혁(17) 군의 집안에서는 '세뱃돈 평등의 원칙'이 적용된다. 나이 불문하고 같은 액수를 주는 것이 거의 불문율처럼 굳어져 있는 것. 이 군은 "어릴 때는 나이 많은 형들과 같은 금액을 받아 기분이 우쭐했는데 내가 고등학생이 되고 보니 초등학생인 막냇동생과 똑같은 세뱃돈을 받는 게 기분이 좋진 않더라"고 했다.
적게 주자니 체면이 말이 아니고 넉넉하게 주자니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세뱃돈 고민. 대다수의 가정에서는 고등학생까지 세뱃돈을 주지만 일부에서는 '일정한 수입이 있느냐'를 기준으로 대학생과 취업준비생까지도 세뱃돈을 주기도 한다.
이런 세뱃돈은 받는 이와 주는 이의 입장 차가 상당하게 벌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설날을 앞두고 인사이트코리아 패널아이가 남녀 총 5천7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세뱃돈으로 받고 싶은 금액은 평균 7만2천원이며, 주고 싶은 금액은 3만6천원으로 나타난 것. 구체적으로는 세뱃돈을 줄 경우 1만~5만원 사이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68.2%에 달한 반면, 받는 입장에서는 41.9%에 달했다. 반대로 5만~10만원 사이는 받는 입장의 응답자 중 30.3%가 적당하다고 답했으나, 주는 입장의 응답자는 16.4%에 불과했다.
이런 명절 용돈 고민에 대해 지난해 추석 개그콘서트의 '애정남'이 그 기준을 제시했다. 애정남은 "초등학생 1만원, 중학생 2만원, 고등학생 3만원"으로 딱 정해줬으며, "설날에는 세배가 있어서 세뱃돈을 줘야 하지만 추석에는 절을 하지 않기 때문에 용돈을 줄 필요가 없다"며 반전 개그를 내놨다. 그러니 이번 설날 세배를 제대로 하지 않는 조카에게는 세뱃돈을 줄 필요가 없으며, 대신 각자의 개인기나 장기자랑 등을 선보이면 액수가 추가될 수도 있다.
◆덕담과 잔소리의 경계는?
노처녀 노총각들이 명절에 가장 두려운 소리는 "결혼은 언제 할 거냐"는 질문. 또 취업준비생에게는 "올해는 취업해야지"라는 말, 학생들에게는 "공부는 잘 하고 있냐?"는 물음이 가장 듣기 싫다고 한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이 고객 83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 명절에 가장 큰 바람'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두둑한 명절 보너스'(42%)에 이어 '잔소리로부터의 해방'(15%)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을 정도인 것.
하지만 입장 바꿔놓고 말을 하는 사람도 조심스럽긴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본 사촌동생에게, 조카에게 무슨 말을 건네긴 해야겠는데 자주 보질 못하다 보니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도 않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오는 상투적인 질문이 '결혼, 취업은 언제?' '하는 일은 잘되느냐?' 등이다.
이현석(47) 씨는 "사실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고 벌써 3년째 백수 생활을 하고 있는 조카를 볼 때면 답답하기도 하고 이젠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말해주고 싶지만 가끔 얼굴이나 보는 삼촌이 무슨 충고를 하겠느냐"며 "그러다 보니 명절 때는 늘 '취업준비 잘 돼가냐? 공부 잘 하고 있냐?'는 말밖에 할 수가 없는데 듣는 조카는 표정이 일그러지더라"고 했다.
그래서 많은 친척들이 한데 모이는 명절에는 덕담을 하는 사람도 입을 열기가 참 조심스럽다. 걱정되고 좋은 일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입을 열었다가 괜히 좋은 분위기를 썰렁하게 하지나 않을지 가려야 하는 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덕담과 잔소리의 경계는 뭘까? 이형진(39) 씨는 "말을 건넸을 때 고개가 푹 숙여지면 '잔소리'고, 씽긋 미소가 떠오르면 덕담"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 씨는 아예 고개가 숙여질 말은 차라리 생략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고작 일 년에 몇 번 얼굴 보는 친척이 걱정해주지 않더라도 그 자신이 가장 고민스러운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대신 "예뻐졌구나" "날씬해졌네" "건강해보인다" "좋은 일만 있어라" 등의 누구나 들으면 기분 좋을 말만 하는 것이 그의 유쾌한 명절 나기 비법이다.
◆처가는 명절 당일? 아니면 다음날?
서모(33) 씨는 명절이면 언제 처가를 가는가 하는 문제로 아내와 약간의 신경전을 벌이곤 한다. 하나뿐인 아들에다 시집간 여동생 얼굴이라도 한번 봤으면 하는 서 씨의 입장에서는 다음날 갔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아내는 명절 당일 차례를 모시고 나면 곧장 친정집에 가고파 안달하기 때문이다. 서 씨는 "물론 음식하느라 피곤하고 마음 편히 쉴 수도 없는 시댁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아내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좀 서운한 감정도 생긴다"고 했다.
최근에는 가정 내 여성들의 발언권이 상대적으로 커지면서 처가가 오히려 사람으로 북적이는 추세다. 황모(42) 씨는 "'아들 많은 집은 썰렁하고, 딸 많은 집은 북적인다'는 말처럼 아들만 둘 둔 우리 부모님은 명절 오후에 무료한 시간을 보내시는데 딸 셋인 처가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며 "부모님께 죄송스런 맘이지만 지금껏 아이 두 명 돌봐준 장모님의 고마움도 있어 처가에서 착한 사위 노릇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요즘은 거의 대부분의 가정이 아들 딸 하나 둘이 고작이다. 그렇다 보니 한번은 본가 우선, 한번은 처가 우선 식으로 차례를 정해놓는 경우도 많다. 손명식(36) 씨는 "온 가족이 상의 끝에 추석엔 명절 당일 처가에 가고, 설 명절엔 다음날 가는 것으로 룰을 정했다"며 "대신 누나는 그 반대의 패턴으로 움직여서 한번은 온 식구가 한데 모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도록 맞췄다"고 했다.
◆선물은 누구에게까지 준비해야 하나?
명절에는 부모님과 형제자매, 친척, 직장상사와 평소 고마웠던 지인까지 챙기려면 선물비용 지출도 무시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과연 어느 '선'까지, 어떤 가격대의 선물을 준비할 것이냐가 늘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가을 결혼한 김나은(26) 씨는 "친척들 선물 고루 챙겨라"는 시어머니의 전화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7가정의 어른과 아이들까지 다 챙기려면 그 품목을 정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비용도 무시 못 할 일이기 때문이다. 김 씨는 "결혼하고 첫 명절인데 뭔가 뜻 깊고 생색나는 선물로 준비하고 싶지만 생활용품 세트만 사도 하나에 1만~2만원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몇 날 며칠 고민만 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결혼 12년차인 강희연(36'여) 씨는 친척들 선물 걱정을 더는 그만의 묘안을 갖고 있다. 문경에 있는 시댁에 갈 때 쇠고기와 폭립 등의 바비큐 거리를 사들고 가는 것. 그렇게 되면 온 식구가 둘러앉아 파티를 즐길 수 있어 선물 걱정도 덜고 며느리 입장에서는 한 끼 식사 준비 부담까지 더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고 했다.
대가족인 강호영(45) 씨는 아예 형제들끼리 암묵적인 룰을 정했다. 선물은 부모님 것만 챙기고, 친척들 집에 방문할 때 들고갈 선물은 돌아가면서 하나씩 책임지는 것이다. 강 씨는 "제사 지내는 데만 여섯 집을 돌아야 하는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고 해서 생각해 낸 고육지책"이라고 했다.
영업직원인 황모(35) 씨는 친척들 선물은 1만원 미만의 차례용 술 한 병 들고 가는 것으로 인사치레를 하지만 거래처에는 몇 만원짜리 양주를 늘 준비한다. 그가 VIP로 관리하는 이들을 위해 명절마다 선물값으로 100만원을 넘어서는 돈이 지출되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비용'이 아닌 '투자'인 셈이다. 황 씨는 "워낙 선물비용이 많이 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부모님과 친척들의 선물비용은 줄어들 수 에 없는 현실"이라며 "조금 손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 뒤통수가 켕기기도 하지만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했다.
중소기업체 입사 5년차인 박모(31'여) 씨는 명절 때면 은근히 선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직원이 많지 않은 가족 같은 분위기의 회사다 보니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에 명절 선물을 챙기는 문화가 있는데 이게 무엇을 주고받느냐에 따라 오히려 마음을 상하게 되는 일도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부장은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전형적인 타입이다. 직원들로부터 과일과 화장품세트 등을 챙기면서 정작 자신은 늘 양말세트나 김 선물세트 등 가장 저렴한 것으로 때우는 것이다. 박 씨는 "이번 설에는 너무 얄미워 나 역시 양말 세트를 준비했다"며 "금액보다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너무 일방적으로 한쪽이 손해 보는 것은 오히려 기분을 상하게 한다"고 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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