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명품 건축, 명품 도시의 조건

입력 2012-01-20 10:55:40

서울 명동은 패션 트렌드와 브랜드들의 가장 까다로운 시장으로 인식되고 한류와 함께 세계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명품 브랜드들이 신제품만 나오면 테스팅 보드로 한국을 제일 먼저 선택한다고 한다. 그러나 '패션 리더'라 불릴 만큼 드높아진 한국인의 안목과 취향에 비하면 우리 건축과 도시의 위상은 찜찜하기 그지없다.

건축과 도시가, 역사적 증거들을 굳이 내세우지 않더라도 '그 시대, 그 사회가 지향하는 바를 고스란히 담고 모든 유, 무형의 증거임에 틀림없다'고 믿는다면, 우리의 현재가 미래에 짐이 될 수도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2000년을 넘어서면서 우리나라 대부분 도시가 스스로 명품화되기 위한 수단으로 디자인(?)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선진국의 주요 도시들을 벤치마킹하고 겉으로 드러난 도시 분위기와 몇몇 눈에 띄는 건축 디자인을 직수입하는 것을 보편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명품 옷과 보석의 치장만으로 내면까지 명품으로 바뀔 수 없듯이, 어설픈 짜깁기의 튀는 디자인 몇 개론 절대 명품 건축, 명품 도시가 만들어질 수 없다.

명품 건축, 명품 도시란 그 속에서 영위되는 인간 삶의 가치와 특성을 존중하고 지역 고유의 개성을 시스템화하고 네트워크화하는 방식으로 공간과 환경이 구축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건축과 도시들이 갖는 공통적인 디자인과 특성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는 건축과 도시를 조각적인 시각에서의 덩어리, 매스(sculptural-mass)가 아니라, 인간 삶의 행태, 생명의 인과적 외형(follows function)으로서의 볼륨(volume)으로 보는 것이며, '뭘 닮았나?'가 아니라 '뭘 담았나?', 즉 그 속에서 가동되는 프로그램과 콘텐츠가 무엇인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흔히 알고 있는 디자인, 디자인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더 높은 수준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디자인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우리의 건축과 도시가 갈수록 난삽해지고 구차해지며, 더 모호해지는 이유는, 드러난 건축과 도시의 외형적 디자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 속에서 영위되는 각박한 우리 삶의 방증이며 천민 자본 득세의 현재가 겉으로 드러났다 믿으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모 일간지의 선각적 건축가들이 꼽은 베스트 건축 '선유도 공원'은 "산업 시설의 흔적을 남겨둔 채 공원을 만들어 무조건 부수고 다시 짓는 우리 건축 풍토에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마당과 길로만 구축된 서울 인사동 '쌈지길'은 그 흔하디 흔한 장식 자재가 완전히 배제된 철과 유리, 콘크리트만으로 지어진 건축이지만 이 또한 베스트로 치켜세워졌다. 이 모두가 디자인이 최종 목표가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우리 삶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였음의 증거이다.

우리 지역에서도 좋은 건축과 훌륭한 도시를 만들기 위하여 적지 않은 수의 건축공모전(설계경기, PQ, 턴키 등)들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운영되고 있는 대부분의 공모전은 식순과 같은 절차의 형식일 뿐 그 속에서 논의되는 내용으론 좋은 건축과 도시를 만들기엔 아직 부족하다. 건축가들의 책임도 피할 수 없겠지만 살아남기에도 힘든 토양에다 본질마저도 흐릿한 거울로는 옥석을 가려낼 재간이 없다. 아무리 화려한 컬렉션으로 치장하였고, 유명 외국 건축가의 이름을 빌려 새판을 짠다 떠들어대도 그 도시의 아이덴티티가 탄탄할 때라야 비로소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건축시장에 적용되고 있는 좋고 나쁨의 기준은 싸구려 액세서리 시장보다 더 열악하고 비용과 시간 등 치르는 대가도 만만치 않아 개선의 여지는 요원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명품 건축, 명품 도시는 구성원 모두의 다양한 이해와 고급한 의견, 그리고 살아있는 비평 등으로 조성된 성숙한 시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건축은 분명 문화 현상이고, 그 문화가 정교하게 다듬어진 소통 틀로 걸러지게 될 때 그 도시는 랜드마크가 된다. 그리고 이미 세계는 대부분의 물리적 경계가 모호해지고 또한 가까워졌기에 공유되는 사고의 폭은 훨씬 더 넓어졌다. 그럴수록 우리 지역의 차별화된 특성과 역사적인 고유성은 더 빛을 발하게 될 것이며, 그에 기반을 둔 조건과 요구들이 콘텐츠와 프로그램으로 작동될 때 비로소 명품 건축, 명품 도시로 불리게 될 것이다.

김홍근/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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