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알자] 조기 발견 어려운 췌장암

입력 2012-01-16 07:13:28

스티브 잡스 데려간 그 병…가족력 있으면 특히 조심

CT로 볼 때 췌장 중 십이지장과 연결되는 몸통 쪽에 췌관이 좁아지는 약간의 협착이 나타나고 있다.
췌장암은 수술만이 유일한 완치 기회를 제공하지만 조기 진단이 어려워 환자 중 10~20%만 수술을 받게 된다. 췌장암 진단을 위한 ERCP(내시경적 역행성 담췌관조영술) 시행 모습.
CT로 볼 때 췌장 중 십이지장과 연결되는 몸통 쪽에 췌관이 좁아지는 약간의 협착이 나타나고 있다.
'내시경적 역행성 담췌관조영술'로 본 췌장. 화살표로 나타낸 곳이 좁아진 췌관 부위이며 췌장암을 시사한다.
췌장암은 수술만이 유일한 완치 기회를 제공하지만 조기 진단이 어려워 환자 중 10~20%만 수술을 받게 된다. 췌장암 진단을 위한 ERCP(내시경적 역행성 담췌관조영술) 시행 모습.

강기범(가명'72) 씨는 갑작스레 위쪽 배가 아파 병원을 찾았다. 통증은 무디고 둔한 느낌이었고 구역질도 났지만 구토는 하지 않았다. 평소 담배를 피우며 매주 한 차례 정도 술을 마셨다. 당뇨와 고혈압 때문에 10년 전부터 약을 먹고 있었다. 병원에 왔을 때 급성으로 통증이 진행됐지만 열이 나거나 황달 증상은 없었다. 혈압이나 맥박, 체온도 정상 범위였다.

초기 검사에서 복부에 종괴(덩어리)가 만져지지는 않았다. 혈액검사로 봐서 췌장염 가능성이 있었고, 췌장암을 나타내는 종양표지자 검사는 정상 범위였다. CT검사를 했더니 췌장 두부(십이지장과 연결되는 췌장 머리 부분) 주위로 염증이 관찰됐다. '내시경적 역행성 담췌관조영술'(ERCP'입-식도-위장을 지나 십이지장에서 담도와 췌관으로 통하는 곳을 특수 내시경으로 관찰하는 것)에서 췌장 가운데와 끝 부분에 협착이 발견됐다. 마지막으로 세포 검사를 했더니 조기 췌장암으로 진단됐다.

◆조기 진단 어려워 수술은 10~20%만이 가능

위장의 뒤쪽, 척추의 앞쪽에 위치한 췌장은 약 15㎝ 길이의 길쭉한 장기가 옆으로 누운 형태다. 십이지장과 연결되는 넓은 모양의 한쪽 끝을 췌장 두부(머리 부분)라고 부르고 가운데 부분을 체부(몸통), 반대쪽 끝의 좁은 부위를 미부(꼬리 부분)라고 부른다. 췌장의 2가지 중요한 기능은 음식물의 소화를 돕는 체액(소화 효소)을 생산하고, 인슐린과 글루카곤 등 호르몬을 생산해 혈액 중에 포함된 당의 양을 조절한다. 이들 호르몬은 혈액에서 에너지를 얻어 저장하거나 이용하는 과정을 돕는다.

2008년 암 통계를 보면 췌장암은 전체 국내 암 중 아홉 번째(2.4%)를 차지하고 있으며, 사망률로는 폐암(21.4%), 간암(16.1%), 위암(14.5%), 대장암(10.2%)에 이어 5위(5.8%)를 차지할 만큼 중한 질환이다. 췌장암은 췌관상피세포에서 발생하는 선암이 대부분(85%)을 차지한다. 수술만이 유일한 완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지만 불행하게도 조기 진단이 어려워 환자 중 10~20%만 수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심지어 수술을 한 뒤에도 5년 생존율은 낮다. 림프절로 전이된 경우는 10%, 림프절 전이가 없는 경우에도 25~30%에 불과하다. 물론 최근 보고에선 수술기법의 향상과 추가 항암치료의 도입 등으로 생존율이 조금 늘고 있다.

췌장암은 남자에서 더 흔하다. 45세 이전에는 드물지만 이후 급격하게 증가한다. 영상학적 검사로 췌관이나 담관을 막고 있는 종괴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만성 췌장염이나 췌장의 내분비종양, 림프종 등 다른 병에서도 비슷한 형태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CT, MRI, 초음파를 비롯해 역행성 담췌관조영술 등 다양한 검사법이 필요하다. 초음파검사가 비교적 간편하지만 정확도는 고해상도 CT검사가 뛰어나다. 때로는 종양표지인자(CA 19-9) 검사 및 황달 검사도 필요하다.

◆새로 당뇨가 생겼다면 의심해 봐야

췌장암의 여러 위험인자 중 유전적 요인도 있다. 부모가 췌장암을 앓았다면 자식에게 발생할 가능성이 5~10% 정도다. 특히 가족 중 50세 미만에 췌장암을 앓았다면 다른 가족의 발생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아울러 만성 췌장염도 관련이 있다. 국제 췌장암 연구회 결과를 보면, 만성 췌장염 환자 2천15명을 평균 7.4년 추적관찰했을 때 56명에게서 췌장암이 발생했다.

많은 조사에서 당뇨병과 췌장암의 관련성을 보여주고 있다. 2형 당뇨병(1형 당뇨는 췌장이 파괴돼 인슐린 생산기능이 없기 때문에 평생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경우이며, 2형 당뇨는 인슐린을 생산하지만 제 기능을 못해 혈당 조절이 안 되는 경우로 혈당강하제를 통한 약물치료나 운동'식이요법이 필요함)을 주 대상으로 한 결과를 보면, 당뇨가 있는 경우가 췌장암 발생 비교위험도가 2.1배로 알려져 있다.

한편 당뇨병이 췌장암의 원인이 아니라 췌장암으로 진행하는 과정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증거도 있다. 하지만 고령의 마른 사람에게 새로 당뇨가 왔다면 췌장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영상검사를 받아야 한다.

여러 환경적 요인도 췌장암과 관련이 있다. 먼저 흡연 시 췌장암 발생률은 평균 1.5~2.5배 증가한다. 비율은 흡연량이 늘수록 커진다. 금연을 시작하면 췌장암으로 인한 사망률을 25%나 줄일 수 있다. 비만인 사람의 췌장암 발생률이 정상인보다 1.7배 높으며, 키가 큰 경우 작은 경우보다 1.8배 높다. 과체중에다 육체적 활동을 안 하면 발생률이 2.67배나 많았다.

◆가족력이 있다면 미리 검사 받아야

대부분 췌장암 환자는 통증과 체중감소, 황달을 동반한다. 통증은 윗배 쪽에서 등으로 퍼지는 묵직하고 둔한 아픔으로 온다. 간헐적으로 올 수도 있고, 식사를 하면 더 심해지기도 하다가 등을 굽히면 조금 나아지기도 한다. 체중감소는 매우 심하게 나타난다. 식욕부진, 조기 포만감, 지방변과 함께 올 수 있다. 황달은 흔히 가려움증, 회색변, 흑색뇨를 동반한다.

그러나 초기 증상은 암이 위치한 곳에 따라 다양하다. 체부나 미부에 종양이 있으면 통증이나 체중감소가 나타나는 데 비해 두부에 있으면 지방변, 체중감소, 황달로 잘 나타난다. 당뇨나 원인을 모르는 췌장염이 때로 발생하기도 한다.

췌장암은 증상이 생길 정도면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일부 증상을 조기에 발견하면 수술로 암 부위를 잘라내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 최근 췌장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암이 생기기 3년 전부터 복통, 식욕감퇴, 황달, 옅은 대변색, 트림, 체중감소, 복부 팽만감, 배변습관의 변화, 피로감, 수면습관의 변화 등의 증상이 늘었다는 것. 특히 새로 발생한 당뇨병이 있는 경우는 없는 경우보다 3년 내에 췌장암으로 진단될 확률이 8배나 높다고 알려져 있다.

계명대 동산병원 소화기내과 조광범 교수는 "국내의 췌장암 선별검사법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지만, 미국소화기학회(AGA)는 유전성 췌장염이 있는 사람은 35세부터, 췌장암 가족력이 있는 가족 구성원은 처음 췌장암 진단을 받은 가족의 나이보다 10년 전부터 선별검사를 시작하라고 권하고 있다"며 "얼마나 자주 검사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통일된 의견이 없지만 가족력이 있거나 새로 발생한 당뇨가 있는 경우는 췌장암을 발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영상검사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도움말=계명대 동산병원 소화기내과 조광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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