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택견연맹 전무 박훈태씨 가족
지난달 18일 대구 달서구 경북기계공고 실내체육관. 2회째를 맞은 대구시장기 국민생활체육 택견대회에 전국에서 700여 명의 택견 수련생들이 몰려들었다. 앞서 지난해 11월 28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제6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택견이 무예로서는 세계 최초로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덕분에 이날 대회는 택견인들의 축제마당이 됐다. 우리의 전통 무예지만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택견이 설움을 털어내듯 대회장은 틈틈이 익혀온 택견 기술을 뽐내는 선수들의 힘찬 발길질에 연방 환호성이 터졌다.
이곳에서 대회 진행을 맡아 분주한 박훈태(41) 씨를 만났다. 경북택견연맹 전무 겸 경북택견본부전수관 관장인 그는 택견의 인류무형유산 등재가 전통무예 택견을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었다. 택견에 입문한 지 19년, 박 씨는 그 누구보다 택견 보급에 앞장서온 장본인이다. 그의 가족들도 택견 사랑에 동참했다. 택견 수련으로 고수(?) 반열에 오른 박 씨 가족의 단수는 모두 합치면 13단에 이른다. 최근 7단으로 승단된 박 씨, 부인 김유화(42) 씨는 4단, 딸 하늘(13) 양과 아들 정표(12) 군은 각각 초단이다.
흔들거리는 몸짓, 그러나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전광석화' 같은 발길질을 택견의 매력으로 꼽은 박 씨는 "화려하고 현란한 동작을 뽐내는 무술에 눈이 익은 사람에겐 택견의 동작은 어찌 보면 우스꽝스럽고 또 한편으론 촌스럽기까지 하다. 춤을 추는 듯 흐느적거리지만 그 속엔 질서가 있고, 매서운 손발의 놀림은 상대의 허를 찌르는 비수처럼 가공할 위력을 폭발시킨다"고 말했다.
박 씨와 택견의 인연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권도 사범(3단)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뻔했던 박 씨는 택견의 유연함에 빠져 택견 수련자로의 길을 걷게 됐다. 이용복(64) 대한택견연맹 회장 겸 국민생활체육 전국택견연합회 회장에게 택견을 배운 그는 대구와 인천에서 후배 양성을 하다 2002년 경산에서 경북택견본부전수관을 개관했다. "검도, 유도 등을 수련한 덕분에 택견의 동작을 익히기는 수월했다"는 박 씨는 1999년 12월, 최연소로 6단을 땄다.
부인 역시 택견이 맺어줬다. 전수관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난 박 씨 부부는 1999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전국택견대회장에서 택견인들의 축복을 받으며 택견 관장 커플 1호가 됐다. 딸 하늘이와 아들 정표는 배 속에서부터 택견을 배웠다. 택견은 두 아이의 태교였다. 그래서인지 여태껏 잔병치레 한 번 없었다고 박 씨는 말했다.
택견인으로서의 삶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2000년 8월,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은 박 씨는 6개월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면서 생계유지가 어려워졌고, 2002년 부인과도 헤어지게 됐다. 박 씨는 두 아이를 영천희망원에 맡겨 놓고 3년여 동안 먹고살고자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부인과는 다시 재결합(2005년)했지만, 그때 당한 교통사고의 후유증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당시 무릎 연골이 찢어져 수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통증이 가시지 않아 맘껏 운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박 씨는 그나마도 택견 덕분에 걷고 달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한 차례 큰 폭풍이 지나갔지만 택견과의 인연은 놓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 후 택견 알리기에 더욱 열성을 갖게 됐다. "전수관을 차리고 택견 간판을 걸었을 때 개를 분양하는 곳인 줄 알고 문의하는 사람이 많아 당황스러웠다. 우리의 전통 무예를 우리가 몰라서야 되겠냐는 생각에 택견 홍보에 나서게 됐다."
박 씨는 홍길동 복장으로 거리에 나섰다. 그리고 2008년에는 독도로 날아가 일제에 의해 사라질 뻔했던 전통 무예 택견으로 일제의 야욕을 물리치고 우리 땅 독도를 지키겠다고 선언했고, 그해 광복절에는 포항 북부해수욕장에서 6시간 동안 택견 품밟기 기록을 세우며 택견 홍보에 앞장섰다. 전국 곳곳을 향한 발길에 가족이 동참했음은 물론이다.
박 씨를 비롯한 택견인들의 노력은 전통 무예 계승은 물론 택견을 생활 속으로 끌어들였다. 박 씨는 "택견은 상대를 제압하는 데 있어 어떤 무술에도 뒤지지 않지만,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보호 장비가 없어도 다치지 않고 무예를 겨룰 수 있는 점은 건강 단련의 목적을 둔 생활스포츠로서의 가능성까지 품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택견 전수관에선 남녀노소가 함께 운동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어른과 아이, 남녀 간 대결이 가능한 것도 택견의 매력이다. 맨손 무예인 택견은 주로 발로 차거나 걸어서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것으로 승부를 낸다. 상대방 얼굴을 차는 것으로도 이긴다. 손질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민속경기 놀이로 전승되어 상대방에게 상해를 입히지 않는 독특한 경기 방법이 개발되어 있는 한편, 인명을 살상하는 무술적 기법도 함께 전해온다. 198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되었고, 1999년 국민생활체육 종목으로 채택돼 널리 보급 중이다.
전국 전수관 어디에나 회원으로 가입해 배울 수 있으며, 학원이나 도장의 수강비 개념이 아니라 월 10만원의 회비만 내면 전 가족이 다 같이 배울 수 있다. 이 역시 다른 무술이나 종목과 다른 점으로 택견 전수관에 부자, 모녀, 형제 등의 전수생이 많은 이유다. 한복 모양의 택견 도복은 '철릭'이라 불리는데 조선시대 무사복에서 따온 이름이다. 보통 5만원 안팎이다.
초보자는 맨 처음 몸 풀기에 해당하는 '앞엣거리'를 20여 가지 익히고 그 다음에 '기본거리'를 배운다. 기본거리는 기본 스텝인 '품밟기'와 팔 동작인 '활개짓', 허리 아래의 발 공격인 딴죽과 발을 높이 드는 차기 등 '발질', 이어 손을 사용하는 공격인 '손질' 등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흔히 택견을 할 때 '이크, 에크'하는 소리는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는 자연의 호흡법에서 나온 소리다. 홀 새김(혼자 하는 동작)을 익히고 두 사람이 '맞대거리'를 할 단계에 이르면 재미는 더욱 커진다.
이날 체육관을 가득 채운 택견 열기에 박 씨는 "무형문화재 등재로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그동안 택견 알림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해 기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명맥을 이어가는 것"이라며 "경북의 각 시'군에 1개씩의 전수관을 차리는 게 앞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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