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가치 있게 돈 쓰는 법

입력 2012-01-11 11:00:40

지난달 문경에서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연말연시 찬바람을 녹이는 훈풍이었다. 팔순이 넘은 홀몸노인 이야기다. 산발한 머리, 거친 손마디, 남루한 옷, 주름살 많은 윤동녀(81) 할머니. 폐지 실은 유모차를 끄는 모습은 영락없는 넝마주이다.

할머니는 1978년부터 34년째 기초생활수급자로 단칸방에서 홀로 살고 있다. 종종 병원 신세를 질 만큼 몸도 성치 않고, 돌봐주는 이도 없다. 한 달 평균 수입은 기초생활지원금을 포함해 43만 원에 불과하다. 그런 그가 6년 동안 문경 시내 골목을 헤매고 있다. 새벽부터 골목을 누비며 폐지와 빈병, 헌옷 등을 모으고 있다. 2006년부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때를 거르지 않고 하루 평균 100㎏ 이상의 폐품을 모아 고물상에 팔았다.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서일까. 아니다. 나보다 못한 이웃을 위해서다. 할머니는 모은 폐품을 고물상에 판 뒤 차곡차곡 돈을 모았다. 그렇게 1년 동안 모은 돈을 연말에는 어김없이 '타인'을 위해 내놓고 있다. 지난 연말에 이렇게 모은 돈 500만 원을 전년도와 같이 선뜻 내놓았다. 지금까지 자신의 2년치 생활비가 넘는 2천300만 원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탁한 것이다. 그는 단칸방에 살면서 연료비를 아끼기 위해 전기장판을 사놓고도 겨우내 코드를 제대로 꽂지 않으면서 겨울을 나고 있단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은 유용한 생활도구이자, 절대적인 힘이다. 권력과 정보를 능가하는 힘이다. 노랫말처럼 '돈에 울고, 돈에 웃는' 세상에서 돈은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한다.

재창당을 불사한다며 비상대책위원회까지 꾸린 한나라당에 돈봉투 바람이 거세다. 당 대표를 뽑는 지난 전당대회 과정에서 한 후보 측이 당원과 국회의원들에게 수백만 원씩 뿌렸다는 당내 인사의 폭로에서 비롯됐다. 근거 없는 폭로는 아닌 것 같다. 한나라당은 '차떼기 정당'의 오명을 쓴 정당의 뿌리를 잇고 있고, 선거 때마다 공천 헌금으로 수억에서 수십억 원까지 오간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 바로 그 정당이다. 그 소문의 일부는 사정 당국에 의해 사실로 확인되기도 했다. 규모나 차원은 다르겠지만 당 대표 선출 과정에 있는 민주통합당의 돈봉투 논란도 정치권의 부패한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특히 영남과 호남에서 일당 독점을 누리는 두 정당은 국민들보다 공천권자에 목을 매면서 총선과 지방선거 때마다 구린 돈의 악취를 풍기고 있다.

정치권과 함께 공직사회도 돈을 매개로 한 부패 구조가 근절되지 않았다. 공무원들의 돈을 매개로 한 인사 청탁, 농수축협 조합장 및 이사 선거에서 불거지는 돈 매수 논란은 해를 거듭해도 숙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구속된 경산시장에 대한 승진 인사 청탁, 최근에 불거진 농수축협 조합장과 (비)상임이사 선거 과정에서의 돈 선거 논란 등이 가까운 예다.

정치권과 공직사회에서 공천과 매표, 인사를 대가로 건네지는 돈은 적게는 수백만 원, 많게는 수십억 원에 이른다. 돈을 건네는 후보나 승진을 노리는 공직자에게 이 돈은 결코 아깝지 않은 규모다. 왜냐하면 이 돈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로 되돌아오는 부메랑식 종잣돈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문경의 할머니처럼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뭉칫돈을 내놓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당선이나 승진에 눈먼 이들이 뿌리는 돈은 모두 자신을 위한 투자로, 문경 할머니의 땀과 정성이 담긴 돈과는 견줄 수 없다. 다 같은 돈이지만, 쓰는 사람에 따라 쓰는 용도에 따라 가치와 품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요즘 돈 있는 사람들은 욕심 때문에 남을 잘 도우려고 하지 않는다."

넝마주이 할머니가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지방자치단체에 기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많이 가진 자들이 베풀기에는 인색하다는 것이다. 있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한마디다.

세계 최대 갑부인 미국 빌 게이츠가 아프리카 질병 퇴치를 위해 재단을 만들어 엄청난 돈을 기부하는 등 서구의 '착한 부자'들을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어려운 가운데 푼돈을 모아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착한 빈자'들이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하는 현실이다.

정치권이나 공직사회에서 공천이나 당선, 승진 등을 위해 마구 뿌려대는 돈은 그야말로 허섭스레기에 다름 아니다. 이 돈을 넝마주이 할머니에게 모아준다면 정말 가치 있게 사용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김병구/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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