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9급 관원들/ 김인호 지음/ 너머북스 펴냄
조선시대 백성들에게 공권력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사헌부 지평이나 홍문관 교리, 고을의 현감이었을까?
조선시대 백성들은 고관대작은 고사하고 5, 6품의 중급관리조차 대면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오늘날 우리가 공무원과 동사무소나 세무서 직원, 경찰관과 소방관을 만나는 것과는 달랐다. 현대 한국의 공무원들이 '국민을 위한 서비스'를 하고 있다면, 조선시대 관원들은 '서비스 행정'을 명분으로 백성 위에 군림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의 9급 관원들, 하찮으나 존엄한'은 관청과 궁궐에서 일했던 하급관원과 목자, 조졸, 염간, 오작인, 망나니, 거골장, 광대 등의 업무와 삶을 다룬다. 그들 중에는 양반과 백성 사이에서 천시당한 사람도 있고, 왕조의 가장자리에서 실핏줄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며 사람살이가 윤택했던 사람도 있다.
하급 관리들은 권력의 틈바구니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는가 하면, 권력의 끝자락을 잡고 수탈에 앞장서기도 했다. 천대의 대상이었든 부러움의 대상이었든 그들은 적어도 먹고사는 일만큼은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런 까닭에 백성들 입장에서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 유전자 때문에 오늘날 한국인도 그처럼 공무원이 되려고 기를 쓰는지도 모른다.
실록에 따르면 1392년(태조 1년)부터 1863년(철종 14년)까지 호랑이 피해는 937건에 다치거나 죽은 사람은 3천989명이었다. 보고되지 않은 피해까지 합치면 더 많았을 것이다. 이에 조선왕조는 호랑이 전문 사냥꾼을 길렀는데 이들이 착호갑사다. '경국대전'에는 착호갑사를 440명 두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지방에서는 절도사가 군인과 향리, 역리, 노비 중에서 따로 뽑았다.
호랑이 사냥은 맹수로부터 사람을 지키는 역할 외에 공물충당의 기능도 했다. 기우제에는 호랑이 머리가 사용되었고, 가죽은 주요 공물이자 이익 수단이기도 했다. 15세기 말 호랑이 가죽은 면포 80여 필과 교환되었고, 16세기 중엽에는 400여 필의 값으로 매겨졌다. 착호갑사는 위험한 임무를 수행한 만큼 수입도 좋았고, 출세의 기회도 많았다.
산원은 조선 관료제 전문직 중 하나였다. 이들은 땅의 면적과 수확량을 측정하고 정부 물품을 관리했다. 산원들은 상급자인 호조좌랑 이둔을 모시고 다녔는데, 좌랑 이둔은 기생을 끼고 술을 마시고 주정 부리는 일로 하루를 보냈다. 실제 토지 측정은 산원이 맡았고, 뇌물에 따라 면적과 수확량이 뒤바뀌기 일쑤였다. 산원의 한마디에 세금이 오락가락하니 모두 그 앞에 엎드렸다.
관청의 심부름을 맡아했던 소유, 관리들의 앞길을 인도하는 구사, 교통수단인 말을 치료하는 마의, 국왕을 보좌하는 중금, 시간을 알려주는 금루관, 다른 나라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맡은 통사, 국가가 인정한 전문직 의녀, 남성 요리사 숙수 등이 모두 조선시대 관청과 궁궐의 하위 관리였다.
오작인(仵作人)은 시체 검시관이었다. 사인이 분명하지 않으면 그들이 검시했고, 자살인지 타살인지, 치명상은 무엇인지 찾아냈다. 두 번의 검시는 필수였고, 의심나면 4번까지 검시했다. 망나니는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이었는데 회자수(劊子手), 즉 사람을 끊는 기술자라고 불렸다. 망나니들도 수입이 남달랐다. 그들은 사형수를 단칼에 죽여주는 대가로 유가족들로부터 뇌물을 받았다.
조졸은 조운선을 운행한 사람들이다. 각지의 관리들에게 공물을 조금씩 빼앗기거나 배가 침몰하면 이들이 배상해야 했다. 그래서 일부 조졸들은 일부러 배를 암초에 부딪쳐 침몰시킨 후 쌀과 공물을 훔쳐 달아나거나 되팔기도 했다. 이외에도 여진과 일본의 정보를 빼오는 간첩, 말을 기르는 목자, 소금을 만드는 염간, 광대, 백정, 전문 소잡이 거골장 등이 있었다.
하급관리들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였는데 오늘날 일종의 전문직 비정규 공무원에 해당한다.
지은이 김인호는 "조선왕조의 시스템은 우리가 흔히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짜임새가 있었다. 임금이나 왕가, 고급관리의 업무와 일상이 조선의 생활을 증언하는 씨줄이라면, 일반인과 접촉이 많았던 하급 관리의 삶은 날줄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317쪽, 1만6천500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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