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박의 작명탐구] 전 열린우리당 의장 김근태

입력 2012-01-05 15:26:29

"고집 세고 자기 주장 강하며 도덕관념 뚜렷"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치체제다. 단, 지금까지 실시된 다른 모든 정치체제를 제외하고." 영국의 정치가인 윈스턴 처칠의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이다. 결점이 없지는 않지만, 지금까지의 정치체제들 중 민주주의만큼 공정하고 합리적인 체제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의 역사가 짧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냈기에 그만큼 값진 결과물이다. "민주주의란 나무는 피를 마시며 자란다"는 말처럼,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의 열매는 누군가의 고귀한 희생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지난해 12월 30일 타계한 고(故)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그는 민주주의를 꽃피우기 위해 자신을 던진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1970년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체포당했던 사람들 모두가 갖은 고초를 겪었지만, 그 중 고문을 가장 심하게 당한 사람은 고 김 의장이었다. 당시 그를 고문했던 사람은 악명 높은 고문기술자였던 이근안. 그에게 고문을 당한 사람은 신체는 물론이고 정신세계까지 무참히 망가져 나온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고문으로 인해 얻은 파킨슨병, 뇌정맥혈전증과 같은 지독한 고문후유증은 김 의장을 평생 동안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작년 10월, 그가 자신의 블로그에 마지막으로 남긴 "오로지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라는 글은 그의 유언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자유의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그의 삶은, 민주화운동의 역사에 아로새겨져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김근태(金槿泰)는 1947년 2월 14일 경기도 부천에서 출생하여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1970년대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 반독재투쟁의 선두에 섰던 사람으로, 71년 서울대 내란음모사건, 74년 민청학련사건에 관여하여 장기간 도피생활을 하였고, 민주화운동의 선봉으로 설 때는 80년대 신군부의 시기로 민청련 초대의장이 되고부터이다. 그는 깃발사건이라 불리는 서울대 민추위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풀려나던 중,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이근안에게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그리고 그가 받은 고문으로 인한 피해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역학(易學) 용어에 관재수(官災數)란 말이 있다. 관청으로부터 재앙을 받을 운수(運數)란 뜻이다. 한마디로 경찰, 법원과 같은 관의 영향력에 의해 부당하거나 재수 없는 일이 생길 때 관재수가 낀다는 말을 한다. 주로 사주(四柱)상에 관성(官星)이 극해당하거나, 힘을 쓰지 못할 때에 관재수를 조심하라고 한다. 그가 체포되어 고통의 나날을 보낼 당시에 그의 사주나 성명 운에 관재수가 끼지 않았다. 그것은 그때의 시대적인 환경과 배경이 그를 몰아낸 것이다. 그의 성명 운을 보면 식상(食傷)과 비겁(比劫)이 작용하는 이름으로 그 성격이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이 강하며, 도덕관념이 뚜렷하고 심성 또한 여리고 아름다워 동정심이 많다.

그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이 지금처럼 평온한 시기였다면, 문예창작 등의 취미생활을 즐기며 회사 또는 공무원으로 고위직에 오를 수 있는 운과, 천명(天命)을 누리고 살았을 텐데 독재와 군부정치시대에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만난 것이 화근이 되어 예순넷의 할 일 많은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이제 물고문도, 전기고문도 없는 천국에서 편히 쉬시기를 빌며, 그의 이름은 민주화의 큰 별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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