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 가온학교 학생들이 말하는 문제아
"수업 방해되니까 엎드려 자라고 하셨어요. 출석부 체크해 줄 테니까 교실에서 나가라고 할 때도 있었어요. 선생님 원망은 안 해요. 학교에서 저는 사고뭉치 '잉여인간'에 불과했으니까요."
16살 성우(가명)는 중학교 2학년 때 60일 넘게 무단결석을 하고 유급됐다. 부모의 재혼이 싫었던 성우는 중1 때부터 집을 나와 거리를 돌아다녔다. 친구들 돈을 뺏고 거리에서 잠을 잤다. 선생님이 매를 들면 매를 빼앗고 대들기도 했다. 이런 성우가 올봄 학교 부적응 학생을 위한 대구 '가온학교'에 온 뒤 확 달라졌다. 학교 오는 즐거움을 난생처음 알게 됐다. 이곳에 온 지 5개월 만에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요리사,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은 꿈도 생겼다.
성우는 "이곳에서 검사를 받아보고 제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라는 걸 알았다"며 "진심으로 저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이곳이 세상 어디보다 좋다"고 말했다.
28일 오후 대구 중구 남산동 가온학교. 작은 빌딩 3층에 자리한 이곳은 2006년 9월 문을 연 대구청소년대안교육원 부설 대안학교(미인가)다. 학교 부적응 학생들이 다니는 곳이다. 정식 입학생은 15명, 학교로부터 위탁받아 1~4주 특별교육을 시키는 학생들은 1년에 150명가량 된다. 정식 입학생은 국어, 영어, 수학 이외 명상, 텃밭 가꾸기로, 위탁교육생은 집단상담과 노인무료급식봉사 등으로 주5일 수업을 받는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아이들의 '마지막 교실'이다. 한때는 학교폭력의 가해자였던 이 아이들에게 최근 대구에서 빚어진 중학생 자살사건은 어떻게 비칠까 궁금했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종현(가명'19)이는 가온학교에 온 지 4년이 됐다. 처음 왔을 때는 중3인데 구구단도 몰랐다. 몸무게는 36㎏밖에 안 됐다. 게임중독이 원인이었고 2년을 유급한 터였다. 종현이는 "공부만 시키는 학교가 너무 싫었다. 그래서 재미로 친구들을 괴롭혔다"며 "가온학교에선 공부 말고 텃밭 가꾸기나 애견 산책, 봉사 같은 다양한 활동을 하니 좋다"고 말했다.
두 달 전 가온학교에 온 현태(가명'14)는 친구들 돈을 뺏거나 절도를 서슴지 않는 아이였다. 가정환경도 꽤 유복했지만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집을 나와 떠돌았다. "친구들을 괴롭혔지만 그땐 잘못인 줄 몰랐어요. 제가 괴롭히는 걸 누군가 봐도 저를 무서워해 선생님에게 이르지 못했어요."
현태는 "하지만 이제는 제가 잘못했다는 걸 안다. 이곳엔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엄하게 대해주시는 선생님이 늘 가까이에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번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은 피해 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때까지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심각성을 미리 알지 못했다. 드러나지 않는 학교폭력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곳에서 대학 입학을 준비 중인 수혁(19'가명)이는 "그 아이들(가해자)이 차라리 공부를 못하거나 집이 가난하거나 했다면 학교에서도 미리 주의해서 그들을 지켜보지 않았을까요? 선생님들은 공부 잘하고 튀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또 "선생님 한 명에 학생이 30명이 넘고, 수업시간마다 선생님이 바뀌는데 어떻게 깊은 관심을 기울이겠어요"라고 했다.
최해룡 대구청소년대안교육원장은 "학교폭력을 피해, 가해 학생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경향이 있지만, 물질주의, 성적지상주의, 경쟁주의 등 우리 사회가 가진 다양한 공격성이 개입돼 있다"며 "이 때문에 이기적인 성향이 강한 청소년들이 느는 만큼 남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알게 하는 교육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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