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변 강대국 특히 중국에 북한의 존재는 업둥이나 마찬가지다. 혈맹을 강조하며 후견인 역할을 자처하는 중국 입장에서는 말썽이나 피우고 마냥 손만 내미는 북한이 늘 마뜩잖다. 하지만 북한의 안정이 중국의 전략과 국가 이익에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이다. 심지어 중국 관영 언론들은 "북한이 맞을 비바람을 중국이 막아줘야 한다"고까지 강조하고 있다. 미국과 바로 맞닥뜨리는 상황을 결코 원치 않는다는 점에서 북한을 어르고 달래서라도 완충지대로 만드는 것이 중국의 전략이자 고민이다.
반면 미국이나 일본의 입장에서 북한은 불장난이나 해대며 '깝작대는' 귀찮은 존재다. 우리와의 관계는 같은 민족이라는 미명이 무색할 정도로 애증이 교차한다. 북한이 처한 이 같은 지정학적 관계나 줄타기 전략 때문에 한국은 물론 주변 강대국들의 대북 전략과 외교적, 경제적 노력은 들인 공만큼 결과가 시원찮은 게 현실이다.
갑자기 날아든 김정일의 사망 소식은 한반도를 둘러싼 역학 관계와 대북 정책의 실효성을 재차 점검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무소불위의 철권을 휘두른 권력자의 부재가 몰고 올 변화에 대한 이해 당사국 간의 힘겨루기와 눈치싸움이 한층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다. '적극 조문해야 한다'는 야권'종북 세력들의 주장과 '제한적 조문 허용'이라는 정부 입장이 맞서는 것도 북한이 당면한 국난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를 두고 벌이는 우리 내부의 정책 노선 갈등이다.
1994년 김일성 사망 당시 조문사절단 파견을 놓고 극심한 이념적'정치적 대립과 갈등이 빚어졌다. 그 학습효과 때문인지 이번에는 양상이 조금 달라진 듯하다. 정부는 원칙을 해치지 않는 한 유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야권도 모 아니면 도식의 극한 대립은 피하는 모양새다. '북한 주민에게 위로의 뜻'을 전달하고 '이희호 여사'현정은 회장의 조문 허용'에 이어 '민간의 조의문 전달 허용'이라는 선에서 입장을 정리한 정부의 방침은 누가 봐도 무리가 없다.
일각의 주장대로 조문사절 파견이나 개인'단체의 조문 허용이 남북 간 관계 회복과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소위 조문 외교를 통해 남북이 미래를 향한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소리인데 상황이 그리 간단치 않고 논리적 토대 또한 미약하다. 조문을 통한 전략적 행보가 아무리 명분이 서고 필요한 일이라 하더라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동족상잔의 비극과 국민 정서다. 멀리는 6'25전쟁이 있고 가까이는 천안함'연평도 사태가 엄연하다. 김정일 사망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 등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열쇠라고 백번 양보하더라도 짚고 넘어갈 일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조문 외교를 명분으로 정부를 계속 압박하고 대북 기조를 흔들어댈 일이 아니다. 개인이든 단체든 원하면 차라리 그 자리에서 북향 사배(四拜)하라. 대한민국을 위해 오히려 그게 더 나은 방법이다. 옛말에 무엇이든 사리에 맞지 않으면 예의가 아니라고 했고 성현들은 "사리에 맞는 것만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것이 조문을 둘러싸고 공연히 국론 분열을 부추기고 혼란을 초래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김정일 사망에 대한 조문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우리끼리 잘해보자'는 의미를 읽을 수도 있지만 조문에서 실리나 실용을 찾는 것은 예의에도 어긋난다. 나아가 조문 외교가 국가 이익이나 국민 정서와 상관없는 대북 정책의 주도권 싸움이라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김정일 죽음의 의미는 역사의 전환, 한반도의 정세 변화의 계기라는 점에서 원하든 원치 않든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현재 김정일의 죽음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반응도 기대 반 우려 반이다. 3대 세습의 파장과 권력 교체가 몰고 올 북한 내부의 혼란에 대한 우려와 동시에 교착된 남북 관계의 진전을 바라는 목소리가 커서다. 북한 권력의 변화가 긍정적인 모멘텀이 될지 아니면 남북 관계를 더욱 얼어붙게 만드는 걸림돌이 될지는 현재로선 예단하기 힘들지만 개선 모드를 바라는 기대가 과거보다 훨씬 높아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적절한 선에서, 타당한 형식으로 조의를 표하는 게 좋다. 정치권과 오피니언 리더들은 사안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분별 있게 행동해야 한다.
徐琮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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