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자상어 날개탕, 죽생상어 날개탕, 상어 날개 소라탕, 뱀장어 캐비어. 코야(새끼돼지구이), 쌀로(소금에 절여 숙성시킨 돼지 비계)'''.'
지난 17일 37년간 철권지배하다 69세로 숨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일종의 미식벽(美食癖)을 가졌다. 그의 식탁은 이처럼 화려했다. 김정일의 개인 요리사를 지낸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가 북한을 탈출, 펴낸 '김정일의 요리사'에는 그의 별난 호식(好食) 습관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술 역시 좋아해 조니워커 스윙과 헤네시 XO 같은 최고급 술만 찾았다.
그의 음식벽은 2001년 러시아 방문 당시 그를 그림자 수행했던 풀리코프스키 러시아 극동전권 대사의 책 '동방특급열차'나, 역시 같은 해 북한에 들어가 김정일이 연 선상 연회에 참석했던 프랑스 요리사의 경험담에서도 엿볼 수 있다. 김정일의 요리에 필요한 재료는 주문과 동시에 세계 곳곳에서 즉시 들어왔다고 증언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호식했던 그가 미국 유럽 등 선진국병으로 분류되는 심근경색으로 숨졌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오랫동안 채식과 곡류 위주의 식생활과 생활양식을 이어왔고 이에 맞는 신체 구조를 유지했다. 선조들은 이런 식생활로 심근경색을 막아주는 항혈전 성분인 피라진을 섭취했고 이런 병에 잘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곡류 소비 급감과 육류 소비 급증 등 서구화된 식단과 생활양식으로 심근경색 같은 선진국형 질병들이 덮쳤다. 김정일도 김일성처럼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점에 미뤄 고기와 고급 요리를 즐겼던 식생활도 한 원인이었을 것 같다. 그의 호식과 죽음엔 옛 춘향전의 암행어사 이 도령이 읊은 한시가 어울림 직하다.
'금 술잔의 맛 좋은 술은 천 백성의 피요(金樽美酒千人血), 옥 그릇의 기름진 안주는 만 백성의 기름이니(玉盤佳肴萬姓膏 ), 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도 떨어지고(燭淚落時民淚落),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도 높다(歌聲高處怨聲高)'는 한시가 수많은 인민을 굶주리게 한 그의 폭정을 그린 듯해서일까.
그가 평생 맛난 음식 먹는 동안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요, 밥은 백성의 하늘이다'는 세종대왕의 백성 다스리는 법을 한 번이라도 생각했을까. 31년 6개월간 조선을 통치한 세종이 가장 걱정하고 두려워한 것이 바로 '밥은 백성의 하늘'(食爲民天)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정인열 논설위원 oxe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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