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뒤, 난 빵빵한 직장인"…특성화고 선택 중학생들

입력 2011-12-20 07:22:54

제일여상 수석 합격, 이곡중 김경인 양…대구공고 선택한 학남중 조영권 군

특성화고에
특성화고에 '취업 순풍'이 불면서 성적이 좋은 중학생들이 일반계고 대신 특성화고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사진은 대구제일여상과 대구공고에 각각 수석, 차석으로 합격한 이곡중 김경인 양(사진 위쪽)과 학남중 조영권 군.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대학 졸업장을 갖고도 취업을 못해 대졸자가 전문대에 다시 진학해 기술을 익히는 일이 낯설지 않은 세상이다. 최근엔 금융권과 공공기관에서부터 고졸 채용이 늘어나면서 두터운 학력의 벽도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특성화고(옛 전문계고)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공부를 못하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진학한다는 편견도 사라지고 있다. 2012학년도 특성화고 입학 전형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대구제일여자상업고과 대구공업고에 입학한 김경인 양, 조영권 군을 만나 특성화고를 선택한 이유와 장래 포부를 들어봤다.

◆제일여상 수석 입학, 이곡중 김경인 양

"붙기야 하겠지만 수석 합격하리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몰리는 학교니까요."

중학교 내신성적이 3.8%인 경인이는 뜻밖의 수석 합격 소식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제일여상은 대구 특성화고 가운데 특히 성적이 좋은 중학생들이 몰리는 곳으로 꼽힌다. 그중에서도 경인이가 원서를 쓴 회계금융과는 이번 전형에서 신입생의 중학교 평균 내신성적이 26.5%일 정도다. 지난해 대구 4개 자율형 사립고의 지원 조건이 내신성적 30% 이내였으니 그만큼 우수한 학생들이 몰렸다고 할 수 있다.

일반계고에 가도 충분히 상위권을 차지할 만한 성적인데 특성화고에 지원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경인이도 제일여상에 원서를 내기 전까지 망설였다. 특성화고는 면학 분위기가 흐릴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 일반계고 진학을 고민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권유에 마음을 굳혔다.

"어머니가 신문에서 제일여상 3학년생들이 잇따라 은행에 입사하고 있다는 기사를 본 뒤 입학을 권유하셨어요. 어머니는 제일여상에 찾아가셔서 교육과정과 취업교육 등에 대해서도 꼼꼼히 물어보셨죠. 아버지 역시 대학 간판보다 실리를 먼저 따져야 한다며 어머니의 생각에 흔쾌히 찬성하셨고요."

금융, 경제 분야의 직업을 갖고 싶다는 게 경인이의 꿈. 일단 제일여상에 원서를 내기로 결정한 뒤에는 망설이지 않고 회계금융과에 지원했다. 2일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산업은행에 합격했다는 3학년생이 고사장을 안내해주는 걸 보곤 '꼭 저렇게 되겠다'고 다짐했다. 면접을 마친 뒤에는 우연찮게 이곳에서 근무 중인 1학년 때 담임교사도 만났다.

"1학년 때 담임이셨던 김현심 선생님은 (일반계고 학생들보다) 일찍 확고한 목표를 세운 만큼 열심히 공부하면 원하는 일이 이뤄질 거라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새삼 특성화고를 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인이는 외국어 공부에 관심이 많다. 일찍 합격이 결정된 만큼 입학 전까지 컴퓨터와 회계 관련 자격증 공부 외에 영어, 중국어, 일본어 공부에도 신경을 써 공인어학시험에 도전할 생각이다. 시중 은행뿐 아니라 금융감독원 등 공공기관과 코트라(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까지 노려본다는 당찬 목표를 갖고 있어 외국어는 반드시 챙긴다는 각오다.

"제 꿈을 남들보다 한 발 먼저 이루기 위해 특성화고를 선택한 거예요. 선배 언니들 못잖게 특성화고 출신도 잘할 수 있다는 걸 꼭 보여주겠습니다."

◆대구공고 선택한 학남중 조영권 군

영권이는 특성화고 진학을 택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중학교 내신성적은 22.5%. 주위 친구들 중에선 '대학에 안 갈 거냐'는 등 말리기도 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삼촌과 형의 친구 등으로부터 일찌감치 특성화고 진학의 장점에 대해 들어오면서 진로를 정했기 때문이다.

"삼촌이 대구공고를 졸업하고 전기업을 하고 있는데 제 진로를 두고 여러 말씀을 해주셨어요. 일반계고에서 어중간하게 공부하다 수능성적에 맞춰 대학에 진학해봐야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하셨어요. 그보다는 전통 있는 특성화고에 가서 전문 기술을 익히는 게 낫다고 하셨죠."

영권이는 당초 마이스터고인 구미전자공고에 원서를 냈다. 구미국가산업단지가 배후에 있어 대기업에 입사할 확률이 보다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 하지만 시험을 잘 치르지 못한 탓에 10월 말 최종 합격자 발표에서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그래도 일반계고로 방향을 틀지 않았다. 대구 특성화고 전형에 도전, 이달 초 대구공고 지원자 중 두 번째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는 기쁨을 맛봤다.

"형의 친구 중 대구공고 학생이 있어요. 그 형이 이 학교 출신 선배들이 사회 여러 분야에 진출해있고 학교 분위기도 괜찮다고 추천하더군요."

영권이는 또래 중에서도 작은 체구에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는 평범한 소년. 하지만 자신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일에 있어선 어린 나이답지 않게 제법 고민한 흔적이 엿보였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많이 지원하는 전자기계과 대신 디지털전기정보과를 선택했다.

"디지털전기정보과에 진학하면 나중에 대학을 갈 경우 전력과 전기설비 등 전기 관련 분야뿐 아니라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 등 IT 관련 전공을 공부하기에도 더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일단은 현장 경험과 지식을 겸비한 전자 엔지니어로 인정받는 게 목표예요."

특성화고인 만큼 영권이가 내년에 배울 과목 중에는 생소한 것이 많다. 컴퓨터 활용 교육은 평소 컴퓨터를 많이 다루는 만큼 그리 버겁게 느껴지지 않지만 전기기기, 자동화설비, 디지털논리회로, 전기회로 등은 낯선 분야다. 하지만 영권이는 자신감을 잃지 않고 있다.

"새로운 과목을 배운다는 두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신입생은 모두 같은 조건 아닌가요? 열심히만 한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믿어요. 고3이 될 때 친구들 중 일반계고에 간 아이들은 수능시험 준비에 바쁘겠지만 전 이미 취업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더욱 힘이 납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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