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鐵)은 산업혁명의 총아였다. 철이 없는 산업화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철은 산업화의 물적 토대로 그 출발점이자 세상을 뒤바꾼 신기원이었다.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쓰이지 않는 곳이 없는 철은 어느 광고의 카피처럼 '조용하게 세상을 움직이는' 뼈대 그 자체다. 구리'알루미늄 등 대체재나 반도체, 탄소섬유 등 신소재의 개발로 철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낮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철을 제외하고는 20세기를 정확하게 설명하기 힘들다.
대한민국 산업화의 주역들도 철강 생산 없이는 그 어떤 도전도 헛된 꿈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식했다. 30, 40년 전 온 국민이 귀 따갑게 들어야만 했던 중화학공업 혁명의 기치도 사실 제철소 건설 없이는 사상누각이었다. 영일만 모랫바람과 함께 시작된 포항제철은 단순히 공장의 개념을 뛰어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변화의 패러다임이자 시대적 사명이었다. 자본과 기술은 물론 자원도 경험도 없었다. 하지만 불과 30여 년 만에 철은 대한민국을 바꿨고 산업화를 완성했다.
영일만'광양만 신화를 일궈낸 철강왕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13일 고단한 육신을 누이고 영면했다. '짧은 인생을 영원한 조국에'라는 좌우명이 보여주듯 제철은 그에게 조국이었으며 혼(魂)이었다. 세계의 업신여김과 내부의 논란에도 결국 대일청구권 자금 7천여만 달러와 일본 은행 차관 5천만 달러 등을 밑천으로 그 황량한 모래판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신화를 써내려간 것이다.
박태준은 창업 당대에 포항'광양제철소를 통틀어 2천100만t이라는 어마어마한 생산 체제를 구축하고 떠났다. 세기의 철강왕으로 불린 카네기가 일생 동안 조강 1천만t 생산에 그친 데 비하면 박태준이야말로 '진정한 레전드'로 불려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포항제철소 설비가 처음 가동된 1973년 이후 40년 가까이 단 한 번의 적자도 없이 쇳물을 끓이고 녹여낸 포스코의 신화는 '박태준'이라고 불린 한 사람과 그의 열정, 애국심, 리더십을 믿고 따른 숱한 포철맨들의 땀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포스코와 25년간 인연을 맺으면서 단 1주의 주식도 갖지 않은 무사(無私)의 정신, 완벽하지 않으면 늦더라도 뜯어고쳐야 직성이 풀렸던 그는 '국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인격도 버린' 인물이었다. 세계 철강업계의 거목 박태준 회장의 명복을 빈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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