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책] 다른 남자 만난 아내, 그녀는 이미 다른 여자

입력 2011-12-10 07:49:02

안나 카레니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민음사 펴냄

러시사 대문호 톨스토이의 '안타 카레니나'는 '행복한 가정이 행복한 이유는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는 말로 시작한다. 이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가정이 불행할 수 있는 이유는 수만 가지이고, 행복해질 수 있는 근거는 비교적 간단하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행복해지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로 이해하면 오해일까.

주인공 안나는 오빠 부부의 불화를 해결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갔다가 브론스키라는 젊고 멋진 남자를 만난다. 한순간 그에게 마음을 빼앗기지만 애써 감춘다. 브론스키가 그녀에게 먼저 사랑을 고백했을 때, 안나는 오히려 점잖게 꾸짖어 준다.

안나의 남편 카레닌은 다소 무미한 사람이지만,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다. 남편 덕분에 풍족한 삶을 누리고 사회적 지위도 괜찮은 편이다. 스무 살 차이인 남편에게 애틋한 마음은 없었지만 특별히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모스크바에서 브론스키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에 마중 나온 남편을 보는 순간 그녀는 이미 '다른 여자'가 돼 있었다.(물론 그녀 자신은 아직 자신의 그런 변화를 모르지만)

'기차가 도착하고 플랫폼에 내렸을 때 가장 먼저 그녀의 주의를 끈 것은 남편의 얼굴이었다. 아, 어쩌면 좋아! 어째서 저이의 귀는 저렇게 생겼을까. 그녀는 둥근 모자의 차양을 받치고 있는 남편 귀의 연골 부분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무미하고 다소 근엄한 남자이기는 하지만 남편 카레닌에게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모스크바에서 잘생긴 남자 브론스키의 뜨거운 고백을 듣고 난 안나의 눈에는 죄 없는 남편의 귀가 흉물스럽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귀뿐만 아니다. 평소 남편의 대수롭지 않았던 습관, 즉 손가락을 꺾는 소리가 새삼스럽게 거슬리기 시작한다.

"아이, 제발 손가락 좀 꺾지 말아요. 전 그 소리 질색이에요." 이뿐만 아니다. 이제 그녀는 남편의 코고는 소리조차 싫어진다. 남편의 귀, 남편의 손가락 꺾는 소리, 코고는 소리가 싫은 게 아니라 남편이 싫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안나는 자신이 남편을 싫어하게 됐다는 것을 모르거나 외면한다. 그러나 소설의 중반에 이르면 그녀의 '숨은 마음'은 표면으로 드러난다.

'그이는 인간이 아니에요. 그인 남자가 아니에요. 그이는 관청에서 일하는 기계예요.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어요.'

사람이 좋거나 싫은 데는 딱히 이유가 없다. "그냥 싫어졌다"며 헤어지기를 원하는 남편과 아내 혹은 연인에게 "나의 무엇이 싫으냐?"라고 묻는 것은 어리석다. '그냥 싫다'는 말은 '근본적으로 싫다'는 말이다. 구체적인 이유가 있다면 개선할 수 있겠지만, '이유 없이 싫은 것'은 개선의 기회조차 없다.

안나가 모스크바에서 만난 남자 브론스키를 오직 멋진 남자로 읽지 않아도 된다. 브론스키는 결혼생활에 찾아올 수 있는 수만 가지 '위험' 중에 하나일 뿐이다. 결혼생활이든 일상의 일이든 일단 '브론스키'를 만나게 되면 우리는 치명적인 위험을 껴안는 셈이다. 물론 '나쁜 결혼' '싫은 결혼'이라고 곧바로 끝을 낼 수는 없고, 끝을 내는 것이 바른 선택이 아닐 가능성도 매우 높다.

세상에 편재하는 그 많은 '브론스키'를 모조리 없앨 수는 없고, 노력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소 지루하지만 평범하고 평화로운 날들이 이어지기를 원한다면 우연히 '브론스키'를 만나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 비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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