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기자 한밤 119 체험
이달 3일 경기도 평택의 한 가구전시장 화재현장에서 진화 작업을 벌이다 소방관 2명이 순직했다. 깊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시민들의 안전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몸바치는 구조대원들과 동행했다.
◆"남편이 연락을 받지 않아요!"(오후 10시 20분)
33㎡(10평) 남짓한 대구 달서소방서 119구조대 사무실에 사이렌 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지령 접수용 컴퓨터 화면에 달서구 감삼동 한 아파트에서 아픈 남편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손모(44'여) 씨의 다급한 설명이 이어졌다.
6일 오후 6시부터 근무에 들어간 구조대원 7명이 순식간에 구조복을 입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지령 접수부터 출동까지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차량은 사이렌을 울리며 도로를 질주해 드디어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다. 구조대원들은 도끼와 드라이버, 현관문 파괴기를 동원해 문을 땄다. 귀가 찢어질 듯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철제 잠금장치가 하나 둘 제거되고 10분 만에 문이 개방됐다.
다행히 신고자의 남편은 술에 취해 잠들어 있었다. 구조대원들은 안도감과 허탈감을 동시에 안고 뒤돌아섰다. 구조대 경력 16년차 구태형(44) 대원은 "문 개방 신고는 거절할 수 있도록 법규가 바뀌었지만 이번처럼 사람이 집 안에 있어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상황도 있다"고 했다.
◆야식으로 허기를 달래고(오전 1시)
구조대원들은 야간 근무로 지친 속을 달래려 컵라면과 김밥을 들었다. 길지 않은 식사시간임에도 편하게 먹을 순 없다. 언제 출동 명령이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복장을 갖추고 신경을 곤두세운 채 젓가락을 놀렸다. 구조대 2팀장 배효봉(42) 소방장은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출동해야 하기 때문에 사무실에서도 근무 복장으로 '휴식 아닌 휴식'을 취한다"며 "17년째 구급대원 생활을 하다 보니 취침 시간이 일정치 않아 숙면을 취하기 힘들고 전화벨 소리나 시계 똑딱이는 소리에도 잠을 깨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다시 화재 현장으로(오전 2시 5분)
사이렌 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달서구 신당동 한 주택 3층에서 화재로 추정되는 신고가 접수된 것. 현장 인근에 위치한 성서, 월성 119안전센터 등 5곳에서 출동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4년 경력의 우재웅(38) 대원은 "화재 의심 신고라도 현장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인근에 있는 안전센터 여러 곳에서 출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구조대원들은 차에 오르자마자 좁은 차 안에서 방화복, 장갑을 착용하고 공기호흡기, 도끼, 랜턴 등의 장비를 확인했다. 무전기 볼륨을 최대치로 높여 상황변화를 주목했다.
출동 7분여 만에 무전으로 철수 지시가 내려졌다. 성서 119안전센터가 먼저 현장에 도착해 안전 조치를 마친 것. 가스레인지 취급 부주의로 연기가 새 나왔으며 집 안에 있던 사람도 안전하니 돌아가도 좋다는 내용이었다. 우 대원은 "출동 도중에 작전이 취소되는 경우도 많다"며 "화재 출동은 시민의 생명과 재산이 직접 연관돼 있기 때문에 긴장감이 배가 된다"고 했다.
◆"배관에 사람이 끼였어요"(오전 3시 45분)
피곤이 몰려 오는 오전 3시 사이렌이 또 울리자 본능적으로 지령 접수용 PC 앞으로 모였다. 달성군 다사읍 매곡리 한 아파트 복도 배관실에 사람이 끼였다는 신고였다. 이동에만 20분 이상이 소요되는 거리다. 대원들은 드라이버 등의 장비를 동원해 배관실을 막고 있던 나사못을 모두 풀고 좁은 공간에 갇혀 있던 박모(43'여) 씨를 구해냈다. 박 씨는 휴대폰을 찾기 위해 들어갔다 배관 사이에 끼여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 대원들은 박 씨의 건강을 확인한 뒤 발걸음을 돌렸다.
구조대 배 팀장은 "달서소방서는 대구 달서구 전역과 달성군 다사읍, 하빈면까지 넓은 지역을 담당한다"며 "출동 건수도 매년 증가 추세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성서 지역에 구조대가 창설돼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가족, 눈에 선하지만 사명감으로 뛴다
주간과 야간 근무를 반복하면서 가족을 잘 돌보지 못하는 점은 구조대원들의 가장 큰 아픔이다. 우재웅 대원은 "18개월 된 딸이 있지만 마음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다. 아빠가 매번 다른 시간대에 보이다 보니 아이도 헷갈려하는 것 같다"고 했다. 현장에서 욕설을 듣거나 폭행을 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김효동(27) 대원은 "사고현장에 출동했다가 술 취한 시민에게 멱살을 잡히거나 욕설 듣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달서소방서가 창설된 1996년부터 활동해 온 20년차 변광길(46) 구조대원은 "동료가 희생됐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더욱 긴장하게 된다"며 "하지만 119구조대원을 직업으로 선택한 후 단 한 차례도 후회한 적이 없다. 구조대원들의 유일한 보람은 시민들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 그 사명감이 신발끈을 조이게 만든다"고 했다.
백경열기자 b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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