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당'에 등돌린 민심 야당으로 대거 이동

입력 2011-12-05 20:28:21

'푸틴 당'에 등돌린 민심 야당으로 대거 이동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이끄는 러시아 여당인 '통합 러시아당'이 4일 치러진 총선에서 어렵게 과반 의석을 확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선관위가 5일 오전(현지시간) 96% 개표 상황에서 발표한 잠정 집계 결과에 따르면 통합 러시아당은 49%의 득표율로 전체 450개 국가두마(하원) 의석 가운데 238석을 차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과반 의석을 넘는 것이지만 지난 2007년 총선 때 64% 득표로 개헌을 주도할 수 있는 3분의 2 의석(300석)을 훨씬 뛰어넘는 315석을 확보한 것과 비교하면 크게 빛이 바래는 결과다.

◇ 여당 지지표 야당으로 대거 이동 = 여당의 저조한 성적에 비해 제1야당인 공산당과 중도좌파 성향인 '정의 러시아당'은 약진했다. 지난 2007년 총선에서 11% 득표로 57석을 얻었던 공산당은 이번에는 19%의 득표율로 92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07년에 7% 득표로 38석을 얻었던 정의 러시아당도 13%를 득표해 64석을 확보할 전망이다.

극우민족주의 성향의 자유민주당도 4년 전 총선 때보다 16석 정도를 더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마디로 여당 지지표의 상당수가 야당인 좌파와 극우주의 정당으로 옮겨갔다는 의미다. 그러면서도 좌파나 우파 정당 가운데 어느 한 정당에 표가 쏠린 것이 아니라, 다양한 스펙트럼의 야당이 여당 표를 골고루 나눠가진 것은 특정 야당에 대한 유권자의 적극적 지지 표시라기보다 여당을 이탈한 표심의 차선적 선택의 결과로 해석된다.

◇ 푸틴 복귀, 메드베데프 약속 위반에 불만 = 여당의 득표율 저하는 사실 투표 이전부터 예상됐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여당 득표율 하락의 가장 큰 원인으로 푸틴 총리와 통합 러시아당의 장기 집권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높아진 점을 꼽는다.

특히 2000~2008년 대통령직을 두번이나 연임하고 헌법상의 3기 연임 금지 조항에 밀려 총리로 물러났던 푸틴이 다시 크렘린 복귀를 선언한 것이 중산층 이상 엘리트 계층에 상당한 불만을 야기했다는 분석이다.

또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요란한 현대화 구호에도 불구하고 자원의존적 경제구조가 크게 개선되지 않은데다, 그가 집권 이후 약속했던 부정부패 척결에서도 가시적 성과가 나오지 않는 점 등도 유권자의 표심을 멀어지게 했다는 지적이다. 2008년 국제경제 위기 이후 지속되고 있는 경제 불안정이 개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는 점도 부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발달한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정부에 대한 불만이 유권자들 사이에 빠르게 공유되는 상황도 여당의 득표율에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 푸틴 대선 가도에도 먹구름 = 어쨌든 푸틴 총리가 당수를 맡고 있는 통합 러시아당이 그가 출마하는 내년 3월 대선의 전초전 성격으로 치러진 이번 총선에서 부진한 성적을 보임에 따라 푸틴의 대선 가도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지게 됐다.

당장 푸틴의 크렘린 복귀에 차질이 빚어지진 않겠지만 예전과 같은 절대적 지지를 기대하긴 어렵게 됐다. 푸틴의 집권 후 정국 운영에도 총선 결과는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예전처럼 '현대판 차르'로 불리던 푸틴의 카리스마에 기댄 정부와 여당의 독단적 정국 운영이 어려울 것이란 의미다.

이에 따라 모스크바 정치권에선 벌써부터 통합 러시아당과 야당의 연립 및 제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4일 투표 종료 뒤 여당 선거본부를 찾아 "여당이 총선에서 정치적 영향력에 걸맞게 선전했다"며 승리를 주장하면서도 "복잡한 하원 의석 분포를 고려할 때 여러 사안에서 (다른 정당과) 제휴성 블록을 형성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인정했다.

◇ 차기 정부, 야당과 연립·제휴 불가피 = 메드베데프는 선관위의 잠정 개표 결과가 발표된 뒤 의석 확보 7% 선을 넘은 3개 야당 당수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축하의 말을 전하고 향후 정국 운영에 협조를 당부했다. 하지만 크렘린의 제휴 제안에 대한 야당의 반응은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다.

공산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이반 멜리니코프는 "공산당은 잠재적 제휴 대상으로 정의 러시아당과 자유민주당을 생각하고 있으며, 통합 러시아당과의 제휴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정의 러시아당 의장 니콜라이 레비체프도 "여당이 어떤 노선을 택할 지에 따라 사안별로 제휴 가능성을 검토할 것"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고리 레베데프 자유민주당 원내대표도 "여당과 합리적 대화를 할 준비가 돼 있지만, 주인과 하녀의 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파트너로서의 조건이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맹은 의회에서 함께 투표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장관 자리와 지역 수장 자리 등을 함께 나누어 갖는 것도 포함한다"고 덧붙였다. 제휴를 원한다면 차기 정부의 지분을 양보하라는 요구였다.

지금까지와는 크게 달라진 의회 정치 세력 분포와 국민의 낮아진 지지도란 불만스런 총선 결과를 떠안게 된 푸틴 총리의 향후 정국 운영 행보가 주목된다.

연합뉴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