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사·복통·혈변·체중감소 …대장암이 호시탐탐
'염증성 장질환'은 여전히 일반인들에겐 낯선 병이다. 흔히 염증성이라는 표현 때문에 항생제를 먹으면 될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하지만 국내에서 아직 희귀질환에 속하는 염증성 장질환은 발병 원인조차 불확실한 난치병이다. 단순한 장염과는 전혀 다른 병이라는 말이다. 인체에 침입한 나쁜 균을 공격해야 할 백혈구가 대장이나 다른 소화기관을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하는 것, 그것이 염증성 장질환이다.
대장만 공격하면 '궤양성 대장염', 입부터 항문까지 소화관 어느 부위나 공격하면 '크론병'으로 분류된다. 소화기관이 헐고 피가 나며, 달라붙고 복통, 설사, 체중 감소가 이어진다.
◆국내 발병 크게 늘고 있어
김민주(가명'22) 씨는 두 달 전부터 설사가 계속돼 결국 병원을 찾았다. 처음에는 코 같은 점액질이 섞인 설사를 하루에 4, 5차례 정도 했다. 장염에 걸렸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일주일 전부터는 선홍색 피가 섞인 설사가 계속돼 대학병원까지 찾게 됐다. 한 달 이상 지속된 병의 경과를 지켜보고, S자 결장경(대장 끝 부분인 직장에서 안쪽으로 20~30㎝가량 S자로 굽은 곳을 살펴보는 내시경)을 한 결과 '궤양성 대장염' 진단을 받았다. 항염증제인 아미노살리실산을 먹고 증상이 나아졌고, 이후 계속 약물로 유지요법을 하면서 다행히 악화되지 않고 잘 유지되고 있다.
박성훈(가명'19) 군은 항문 주위에 진물이 나면서 통증이 계속돼 외과 병원을 찾았다. '치루' 진단이 내려져 수술까지 받았지만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결국 '크론병'이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학병원으로 오게 됐다. 일 년 전부터 간헐적인 오른쪽 아랫배 통증과 하루 2, 3회 무른 변이 있었다. 하지만 그저 '과민성장증후군'으로 생각하고 지내왔다. 172㎝의 키에 몸무게는 49㎏으로 매우 마른 체격이었다. 대장내시경 결과 회장(소장은 십이지장-공장-회장으로 구성됨. 회장은 대장과 이어지는 부위) 끝 부분에 장의 길이 방향과 나란한 궤양이 생겼고, 일부 협착(소화관 내부가 달라붙는 것)도 발견됐다. 결국 그는 '크론병' 진단을 받았다. 이후 약물치료를 꾸준히 받으면서 두 달쯤 지나자 다시 체중도 늘고, 치루 증상도 호전됐다.
염증성 장질환은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는 장의 만성적인 염증이 특징이다. 전통적으로 일찍 산업화가 시작된 북미와 서유럽에서 흔한 질환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지난 30년간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남미, 동유럽에서 빈도가 급격히 늘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00년대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의 유병률은 인구 10만 명당 162명과 246명이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연간 인구 10만 명당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 발생률이 각각 0.05명과 0.34명이었으나 2000년대 이르러 1.34명과 3.08명으로 발생률이 크게 증가했다. 발생률만 보면 크론병은 27배, 궤양성 대장염은 9배나 늘어난 셈. 유병률은 인구 10만 명당 11명과 30명에 이른다.
◆젊은 연령에서 잘 발생
발병 원인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유전적인 원인과 함께 환경적 인자도 관여하는 '자가면역성 질환'(몸 안의 장기나 조직을 외부물질로 인식해 공격하는 질환)의 일종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선진화가 진행되면서 발생률이 증가하는 점으로 미뤄 서구화한 식생활 습관 및 산업화 등의 환경인자가 작용할 것이라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또 염색체 우성이나 열성으로 유전되는 유전질환은 아니지만 염증성 장질환을 가진 부모의 자녀 또는 일란성 쌍둥이 사이에 발생할 확률이 일반인보다 높아 유전적 원인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염증성 장질환은 주로 10대에서 30대 사이의 젊은 층에서 많이 발생한다.
크론병과 궤양성대장염은 같이 염증성장질환으로 묶여 있지만 나타나는 양상은 사뭇 다르다. 궤양성 대장염은 대장에만 염증이 발생하는데, 특히 대장 끝 부분인 직장에서 염증이 시작해 장벽의 안쪽 표면인 점막과 점막하층에만 염증이 생기기 때문에 협착이나 천공은 흔하지 않다. 환자는 주로 혈변을 동반한 설사를 호소한다. 아울러 대장암 발생 위험도 커진다.
크론병은 보다 복잡하다. 식도부터 항문까지 모든 장관에 다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소장의 말단부인 회장과 맹장 부위에 잘 생긴다. 장벽 전체에 염증을 일으키기 때문에 장 천공이 생기거나 협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치루, 치열, 항문주위 농양 등과 같은 항문주위 질환이 흔히 동반된다는 것. 따라서 영양분을 흡수하는 소장을 침범하고 천공 및 협착이 발생하기 때문에 복통, 설사, 체중 감소가 환자가 호소하는 주된 3가지 증상이다.
◆꾸준한 치료가 가장 중요
염증성 장질환은 100% 확진할 수 있는 검사법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이 쉽지 않다.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복통, 혈변, 체중 감소 등의 증상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대장내시경을 통한 병변의 모양과 위치, 분포 등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크론병의 경우 대장에는 이상이 없이 소장에만 궤양이 생기기도 한다. 따라서 소장조영술, CT 소장조영술, 캡슐내시경, 소장내시경 등을 할 수도 있다. 궤양성 대장염으로 진단했다가 나중에 크론병으로 바뀌는 경우, 또는 반대인 경우도 생길 수 있다. 특히 서양에 비해 국내에서 비교적 유병률이 높은 장결핵은 크론병과 구분이 쉽지 않다. 회맹부(대장과 소장의 연결 부위)에서 잘 생기고 복통, 설사, 체중 감소 등 증상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크론병 환자가 초기에 장결핵 치료를 받기도 한다.
급성 장염의 경우 1, 2주 이내에 증상이 나아진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설사 증상이 한 달 이상 지속되거나 특히 혈변이 있다면 반드시 진찰을 받아야 한다. 복통과 함께 원인 모를 빈혈이나 체중 감소가 있어도 반드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
현재까지 염증성 장질환을 완치시킬 수 있는 치료법은 없다. 이 때문에 꾸준한 약물치료로 잘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계명대 동산병원 소화기내과 김은수 교수는 "최근 생물학적 제재가 개발돼 좋은 치료 효과를 얻고 있다"며 "완치될 수 있는 질환은 아니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증상 없이 일반인과 다름없는 생활이 가능한 만큼 의사와 상담해 정확한 진단을 받고 꾸준한 치료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도움말=계명대 동산병원 소화기내과 김은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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