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8월 4일 새벽 4시 일본 시모노세키(下關)에서 부산으로 오던 관부연락선에서 두 남녀가 현해탄 속으로 함께 몸을 던져 죽었다. 여자는 미혼의 가수 윤심덕이고 남자는 전라도 갑부의 아들 유부남 김우진이다.
현해탄을 배 타고 건너다보면 죽기에 아주 매력적인 바다라는 생각이 든다. 코비나 비틀 같은 특급 여객선들은 배의 구조가 항해 중에는 밖으로 못나가니까 빠져 죽고 싶어도 그럴 수도 없다. 또 그런 배에서는 바다가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부산과 오사카(大阪)나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카메리아나 팬스타 같은 큰 배를 타고 밤의 현해탄은 건너보면 이런 곳엔 한 번 빠져 죽을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배의 옆구리에서 소용돌이치며 뒤로 밀려나는 아름다운 흰 파도를 보면 그런 유혹이 더 심해진다.
바다가 이렇듯 매력이 있어 죽고 싶은 판에 정말 사연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는 마땅히 뛰어들고 싶은 바다가 바로 현해탄이다.
사람들은 윤심덕과 김우진의 죽음이 양반 가문의 자제가 일개 '딴따라' 여인과 사랑했으므로 혹은 유부남이 처녀와 사랑해 맺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둘은 정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를 않는다. 그 둘은 같이 죽을 만큼 사랑한 사람들이므로 그들의 사랑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도 죽음을 불사할 정도로 단단히 맺어진 사랑이다.
그들의 죽음은 비극의 종말이 아니고 행복의 추구라고 생각해야 될 것이다. 두 사람은 맺어진 사랑을 지켜나가기가 힘이 들어서 죽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선 유부남과 처녀의 사랑은 불륜이라고 손가락질을 한다. 신분 격차가 나는 사랑은 불장난으로 치부가 된다.
사랑이란 안경으로 보면 윤심덕과 김우진은 맺어진 사랑을 지키며 죽었기에 최고로 행복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도덕이란 안경을 끼고 보면 최고로 파렴치한 사람들이다.
인간 행동의 평가가 인식의 관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라는 정반대의 천양지차이가 난다. 나는 어느 안경이 내 눈에 맞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행, 불행이란 사람이 끼고 있는 안경에 따라 서로 다른 결론이 나기 때문이다.
권영재(미주병원 진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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