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속 너구리는 천덕꾸러기 신세

입력 2011-10-29 08:33:17

최근 새 서식지 된 신암공원, 주민 민원에 골머리…보호대책 없어

너구리의 새로운 서식지가 된 신암공원 너구리 가족.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너구리의 새로운 서식지가 된 신암공원 너구리 가족.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갈 곳 없는 이 내 신세여∼."

대구 도심 너구리들이 서러운 신세에 처해졌다. 한때 두류공원에서 5년 가까이 터전을 잡고 잘 살았으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후 신암공원에서 발견된 너구리 가족 역시 환영받는 존재는 못 된다. 올 들어 새끼를 9마리나 낳았으나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신암공원 너구리도 언제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 모르는 처지인 셈이다.

대구시를 비롯해 해당 구청, 공원 관리사무소 등에서 도심 속 너구리를 돌보려는 움직임은 전혀 없다. 오히려 '도심 속 불청객' 너구리는 골치 아픈 존재이자 차라리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으면 하는 귀찮은 존재로 남아 있다. 너구리의 새로운 서식지가 된 신암공원 관리사무소는 너구리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해당 구청인 동구청은 신암공원에 아예 너구리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한 듯했다. 신암공원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시나 구청에서 특별한 보호대책이나 관리지침이 내려온 것이 없으며 차라리 계속되는 항의성 민원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없는 것이 나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동구청 공원 담당자는 전화를 하자 길게 대답하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신암공원 관리사무소에 물어보라"며 전화를 돌리기에 급급했다.

야생동물 전문가들과 동물보호단체의 의견을 물어 '신암공원에서 새로 태어난 너구리 몇 마리를 두류공원으로 옮기는 방안'에 대해 검토하기도 했다. 신암공원이 너무 작아 10여 마리의 너구리가 살기에는 부적합하고 좀 더 나은 서식지였던 두류공원에 다시 너구리가 살 수 있도록 인위적 방법으로 도왔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런 제안이 나온 것.

하지만 너구리는 '탁구공'과 같은 존재였다. 신암공원 관리사무소와 동구청은 하루빨리 다른 곳으로 강제이주를 시켜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두류공원 관리사무소는 골칫덩어리였던 너구리가 다행히 미스터리처럼 사라졌는데 다시 온다고 하니 펄펄 뛰며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두류공원 관리사무소 재산담당자는 "너구리가 수십 마리 있었을 때, 각종 민원성 항의 및 전화 등으로 업무를 제대로 보기 힘들 정도였다"며 "현재로서는 너구리가 다시 두류공원에 오는 것을 환영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결국 도심 속 너구리는 갈 곳이 없는 셈이다. 옛 서식지였던 두류공원도, 새 서식지가 된 신암공원도 너구리가 인간과 공존하며 서식할 만한 곳은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 현재 신암공원 관리사무소는 '너구리를 조심하라'는 플래카드만 걸어놓았을 뿐 먹이를 준다거나 보호 대책을 마련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