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음악을 깨닫다

입력 2011-10-28 10:57:29

며칠 전 모처럼 대구 북구문화예술회관 공연장을 들렀다. 거리가 멀어 자주 찾진 못하지만 가끔씩 들르는 그곳의 특이한 풍경은 어린이들을 데리고 오는 젊은 엄마들이 많은 점이다. 그날은 21년간 P 선생이 사재를 털어 운영하고 있는 민간 오케스트라의 연주회였고 '금난새' 선생이 객원 지휘를 맡았다. 해설을 하면서 곁들이는 지휘자의 멘트에서 당일에야 곡목을 알았고, 리허설을 하면서도 많은 고생을 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개인의 힘으로 꾸려 나가는 민간 오케스트라의 운영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 또한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주변을 살피니, 어린이 합창단의 연주 프로그램도 있어서인지 그날따라 더욱 많은 어린이와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어서 공연장의 저녁 풍경이 무척 포근하게 느껴졌다.

이상하게도 클래식 음악회에만 가면 누구나 왠지 모르게 조금 긴장되고, 표정이 굳어지는 경우가 많다. 괜히 진지한 표정으로 들어야 할 것 같고, 아무리 졸려도 참아야 하고 혹시 박수라도 잘못 칠까 봐 옆 사람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집중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지휘자의 익살스럽고 어눌한 말투와 재치 있는 해설 덕분에 편안한 분위기에서 연주에 빠져들 수 있었다. '브라보'를 언제 해야 하는지를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고 연습시키면서 시작한 음악회는 시종일관 지휘자가 관객들이 연주에 동참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자상한 배려를 하였다. 연주 도중 모두가 잘 알고 좋아하는 아리아가 나오자 즉석에서 청중들에게 합창 부분을 허밍으로 함께 연주하게 해서 잊지 못할 즐거운 순간을 선사하기도 했다. 마지막에 관객들의 환호에 보답하는 앙코르 공연을 하려는데 연주할 곡이 미처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첫 번째로 연주했던 곡을 다시 하려니까 그마저도 이미 악보를 회수해 가버린 뒤였다. 할 수 없이 마지막 곡인 '축배의 노래'를 한 번 더 연주하기로 했는데, 성악가들도 순서가 끝났다고 이미 무대를 떠난 후여서 오케스트라만으로 연주하게 되었다. 정말 당황스런 순간이었지만 지휘자는 그 짧은 시간에 기지를 발휘해 청중들에게 허밍으로 합창을 하도록 유도하였다. 그러는 사이 퇴장했던 소프라노 두 사람이 다시 무대에 나와 마치 각본이 짜여 있었던 양 지휘자와 함께 팔짱을 끼고 노래하며 유쾌하게 마무리를 해 그곳에 있던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가 활짝 웃으며 정말 즐거운 기분으로 연주회장을 나서게 해주었다.

공연장을 자주 찾는 분 중엔 지나치게 진지한 분들이 가끔 있다. 팔짱을 끼고 객석에 앉아 마치 심사 위원이라도 되는 양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조금만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연주자나 단체에 온라인상에서 온갖 가혹한 비평을 쏟아내곤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그날의 연주는 당연히 못마땅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날 저녁 그곳에 있던 어린이와 어른들의 즐겁고 행복한 표정만으로 따진다면 그날의 연주는 감히 최고의 연주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얼마 전 이번 대구 국제오페라축제 때 오페라 '아이다'의 지휘를 맡은 '실바노 코르시' 선생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반주를 맡은 오케스트라 인원이 부족해 학생들도 참여해 함께 연주를 했단다. 유명한 지휘자와 함께 연주를 하는 것이 부담도 되거니와 학생들이니까 당연히 기량도 좀 모자랐단다. 그렇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오늘 미진한 부분은 집에서 이런 식으로 연습을 해 와서 내일 다시 맞춰보자며 몇 번 격려를 거듭하노라니 어느 날 모두가 깜짝 놀랄 만한 훌륭한 음이 나기 시작하더란다. 더 좋았던 건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소리에 만족한 학생들이 너무나 행복한 표정으로 연주를 해서 참 기뻤다는 얘기를 했다. 그렇다! 못하는 건 따뜻한 격려로 잘하게 하면 되고, 애들이 좀 떠들고 예의가 없으면 가르치면 된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음악은 지나치게 고상할 필요도, 진지할 필요도 없이 그냥 듣는 사람이, 연주하는 사람이 즐겁고 행복해지면 된다는 것을….

강민구/KMG내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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