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입증한 獨메르켈
지난 19일 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날아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만나서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은행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불과 몇시간 후면 그의 부인인 카를라 부르니(43) 여사가 출산할 것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독일행을 선택한 것은 '오죽 마음이 급했으면…'이라는 관측을 낳았다.
그러나 부인의 출산 자리를 지키지 못한 대가는 23일 벨기에 브뤼셀 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 앞서 메르켈 총리부터 딸에게 줄 곰 인형을 선물받은 것이 전부였다.
메르켈 총리는 23일 EU 정상회담후 사르코지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을 했지만, 거의 입을 열지 않고 사르코지에게 주로 마이크를 넘겼다.
사르코지의 입에서 나온 말은 "프랑스는 ECB의 독립성을 지지하는 독일과 견해를 같이 한다"였다. EFSF의 은행화 주장을 접고 메르켈에 사실상 백기투항을 선언한 것이다.
독일로 돌아온 메르켈은 "EU 정상회담 협상 내용 등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며 독이 올라 있는 반(反) 메르켈 진영 정치권에 24일 승부수를 던졌다.
EFSF 강화 방안에 대한 연방 하원 표결을 제안한 것으로, 26일 EU 정상회담에 앞서 정치권에 공을 넘긴 것이다.
연정내 보수 의원들과 야당은 메르켈의 '원우먼쇼'가 달갑지는 않았지만 EU 최종 정상회담 하루전에 제동을 걸기에는 부담이 너무 컸다.
자칫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것'이 독일 정치권이라는 비난을 받게 될 경우 감당할 수 없는 후폭풍이 몰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메르켈은 26일 EU 정상회담에 앞서 독일 연방하원에서 연설을 통해 "유럽의 안정성 기준을 어긴 국가들은 EU가 제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유로존 위기 유발 국가를 또다시 정조준했다.
구제금융을 받는 그리스에 대해서는 "영구적인 감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이탈리아라고 직접 언급은 안 했지만 "유럽의 안정성과 성장성을 지속적으로 갉아먹는 국가"라고 암시하며 강한 경고를 보냈다.
메르켈은 내부 표를 결집하기 위한 연설 후 브뤼셀로 이동하면서 기대했던 낭보를 받아들었다.
하원 표결에서 찬성 503대 반대 89로 압도적인 승인을 얻어낸 것은 물론이고, 야당의 도움 없이도 연정 독자적으로 과반수 득표하는 '총리의 과반수' 확보에 성공한 것이다.
안 그래도 EFSF 기금 최대 분담국인 독일의 눈치를 봐야 하는 EU 정상들이 '독일 정치권의 초당적 합의'라고 가져온 메르켈의 방안을 거부하기에는 역량이 분산됐고 시간에 쫓겼다ㅏ.
이날 합의된 내용은 사실상 메르켈이 주장해왔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독일의 분담액을 늘리지 않고 EFSF를 레버리징(차입)과 중국 등 역외 자본을 통해서 강화하면서 그리스 채권 보유 은행들의 손실 분담률(헤어컷)을 50%로 높였다.
또한 유럽 은행들이 내년 6월30일까지 자산을 확충해 의무 자기자본비율(Tier I)을 9%로 강화하도록 한 것도 메르켈의 요구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더욱이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총리와 신경전을 벌이면서까지 다음달 15일까지 개혁을 실행하겠다는 항복 약속도 받아냈다.
메르켈은 정상회담 합의 직후 "우리가 유럽인들에게 위기의 원인을 찾았고 해결책에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갔다. 우리는 기대에 부응할 수 있었고 올바른 일을 했다"고 말했다.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독일 언론은 외부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듯 '독일의 완승'을 드러내놓고 자축하지 않았지만, 만족감을 감추지 않았다.
독일 슈테른지는 '짧은 순간의 (정치권과의) 하모니로 전권을 가진 메르켈'이라는 제목으로 메르켈이 의회 승인을 바탕으로 성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슈피겔은 정상회담 후 환하게 웃는 메르켈 모습의 사진과 함께 "드라마틱한 시간들이었다. 유럽이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이날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의 DAX 30 지수는 3% 이상 상승했다.
험로를 걸어온 그리스 증시는 이날 오전 5% 이상 치솟았 고, 메르켈의 영향권에 들어선 이탈리아도 4% 가까이 오른채 거래됐다.
포브스지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3번씩이나 메르켈을 선정한 이유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순간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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