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토크(49)] 우리와 그들을 구분한 90년대 목소리…너바나

입력 2011-10-27 14:31:38

팝계에서 또래 집단의 힘은 대단하다. 기술의 진보로 대중음악의 소비 연령이 낮아진 1950년대 이후 현상은 더욱 뚜렷해진다. 엘비스 프레슬리나 비틀스, 마이클 잭슨 같은 시대의 아이콘은 예술적 성과 이전에 또래 집단의 목소리를 대변했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를 가진다.

1950년대, 또래 집단은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이유 없는 반항으로 맞섰고 1960년대는 베트남전과 핵확산, 냉전에 맞서 반전과 평화의 목소리를 높였다. 1970년대는 이전 시대의 시행착오와 혼돈에 따른 개인주의와 성찰이 또래 집단의 분위기였다. 이른바 '미 디케이드'(Me Decade)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1970년대는 중반을 거치면서 성찰의 목소리를 잃게 된다. 베트남전의 종전은 전쟁의 승패와 관계없이 환영을 받았지만 결과는 60년대가 바라던 반전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디스코로 대변되는 이 시대는 이후 시대의 천박함과 탐욕을 예고한다.

1980년대는 시작부터 애매했다. 60년대의 아이콘이었던 존 레넌의 피살은 이상주의가 저물었음을 상징했고 신자유주의를 내세운 레이건 정부는 물질과 소비를 최고의 가치로 등극시켰다. '김미 디케이드'(Gimme Decade) 시대로 불리는 80년대는 역사상 최대의 자선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진정성을 의심받으며 천박과 탐욕의 시대로 여겨진다.

1980년대의 상징은 마이클 잭슨이다. 1990년대가 시작되면서 공개한 데인저러스 앨범도 정상에서 의심 없는 순항을 하게 된다. 하지만 1992년 1월 11일, 대중음악계는 역사상 최고의 혁명이 일어난다. 마이클 잭슨을 왕조에서 밀어내고 새로운 팝계의 제왕이 등극한 것이다. 그것도 변방인 시애틀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던 얼터너티브 록밴드가 이룬 일이었다.

'너바나'(Nirvana)가 앨범 '네버마인드'(Nevermind)로 빌보드 앨범차트 정상에 올랐을 때 팝계는 충격이었다. 마이클 잭슨을 물러나게 한 점도 충격이었지만 비주류 음악이었던 펑크 록이 최초로 차트에 오르더니 정상에 등극한 점 때문이다. 많은 음악평론가들은 승리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 승리는 '우리'가 '그들'로부터 승리했다는 말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비주류를 의미하고 '그들'은 주류를 말한다. '그들'의 천박함과 탐욕에 대해 '우리'의 진정성이 승리했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너바나의 네버마인드 앨범이 발매 20주년을 맞아 특별판으로 공개되었다. 리마스터링과 미발표곡을 모아 발매된 특별판은 LP로도 공개되었다. 1994년 27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밴드의 리더 커트 코베인의 시대정신이 회자되길 기대해 본다. 아쉬운 점은 한국대중음악계가 1990년대 들어 80년대의 천박함과 탐욕을 답습한다는 점이다. 만일 그 흐름이 지금의 한류열풍으로 이어져 있다면 우려가 되는 일이다. 그나마 9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서도 인디음악이 태동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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