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여론조사의 함정

입력 2011-10-25 11:12:46

'숫자는 수사(修辭)보다 명료하다.'

언론에서 흔히 사용되는 명제다. 독자들이 주의'주장이나 각종 형용사를 이용한 아름다운 미사여구보다는 숫자에 대해 더한 믿음과 신뢰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선거철이면 각종 여론조사가 발표될 때마다 '핫이슈'가 된다.

요즘처럼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각 언론사들이 앞다투어 각종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에 대한 지지율 등 여론조사를 발표할 때면 독자들의 눈길은 자연스레 지지율로 향한다. 특히 내일 치러지는 재보궐 선거와 관련, 5일 전까지 발표된 여론조사에 많은 유권자들은 지지성향에 따라 울고 웃었다. 많은 수의 유권자들은 이러한 여론조사를 후보에 대한 참고자료로 활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웬걸, 정작 여론조사 결과의 '홍수'를 바라보는 유권자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여론조사기관이나 언론에서 발표되는 여론조사 결과가 너무 많고 결과에 있어서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같은 날 발표된 결과라 할지라도 오차범위 밖에서 크게 차이 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이번 재보궐 선거 과정에서 여론조사 결과 발표를 놓고 여야 간, 후보 간, 그리고 지지자 간 해석의 차이로 '여론조사 조작'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여론조사의 함정이다. 여론조사 방법에 따라 결과가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가령 집 전화, 특히 전화번호부를 이용하는 여론조사의 경우 직장인들보다는 가정주부나 개인사업자 그리고 장'노년층 유권자들이 설문에 응하는 경우가 많아 투표율이 급증하고 있는 젊은 층 유권자의 표심을 반영하지 못해 실제와 동떨어진 결과가 나오게 된다. 보수적인 한나라당 후보에게 비교적 유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 이유다.

반면, 휴대폰을 이용한 여론조사의 경우 비교적 젊은 층의 여론이 많이 반영돼 민주당 등 야권에 유리한 결과가 나오게 된다. 여론조사 방법의 하나인 ARS 조사 역시 응답률이 3%대에 불과해 전체 유권자들의 의사를 대변하기는 힘들고 심지어 특정 조직에 의해 결과가 왜곡될 수도 있다.

최근 들어 여론조사 경선을 통한 당내 공천이 많아지면서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비교적 쉬운 상대를 고르기 위해 타 정당의 경선에 참여해 조사 결과를 왜곡시키는 행위다. 여론조사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공작적 행태가 '오더'라는 은어로 불린다고 한다.

실제 여론조사 경선 과정에서 타 정당의 지지율이 낮은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라는 은밀한 '명령'이 내려져 경선 결과를 뒤집은 사례는 적지 않다. 지지율 선두를 달리던 후보가 상대조직의 이 같은 '오더' 때문에 여론조사 경선에서 떨어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기관 관계자들은 지난 4'27 재보궐 선거에서도 김해을 등의 보궐 선거에서 이 같은 오더가 있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여론조사 결과가 왜곡되지 않도록 선거관리위원회의 여론조사 관련 규정 세심화, 조사기관과 의뢰기관의 양심 등의 문제 해결이 요구되는 이유다. 언론에서도 여론조사 보도에 신중을 기하지 못해 실제 유권자들의 표심을 흐리거나 유권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내일이면 투표다. 그런데 아직도 누구를 뽑아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 유권자가 다수다. 후보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지 못하기도 하고 각종 여론조사 결과물들에 대한 신뢰성도 낮기 때문이다. 선거 기간 동안 여론조사 결과는 춤을 췄다. 유권자들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여론조사는 여론조사일 뿐 실제 지지율은 아니다. 참고자료일 뿐이다. 현명한 유권자라면 여론조사 결과에 휩쓸려 판단하기보다는 후보자의 공약이나 자질, 정당의 공약들을 신중히 판단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할 것이다.

최창희/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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