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벽' 넘지 못한 남북미 민간대화

입력 2011-10-20 21:47:12

'천안함 벽' 넘지 못한 남북미 민간대화

꽉 막힌 한반도 문제를 민간 차원에서 풀어보자는 취지로 마련된 미국 조지아대 주최 '남·북·미 3자 트랙 2' 토론회가 20일(현지시간) 공동 언론발표문을 채택하고 나흘간의 일정을 마무리한다.

합의문 도출이 어려울 것이란 애초 예상을 넘어선 것이지만 문안 내용에는 큰 의미를 부여할 만한 게 없는 것으로 알려져 민간 접촉의 근본적 한계를 노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측의 한 참석자는 "발표문에 좋은 말을 다 갖다 놨지만 핵심은 없다. 다 예상한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남북측 민간 대표들의 방미는 다음 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북·미 2차 대화를 앞두고 이뤄졌다. 특히 대남 협상 창구인 리종혁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이 북한대표단 단장으로 참석했다는 점에서 북측으로부터 진전된 메시지가 나올 것이란 기대가 있었지만 말 그대로 '희망 사항'에 그친 셈이 됐다.

이번 토론회에서도 역시 천안함 사건이 해법 도출을 가로막은 최대 걸림돌이었다.

북측은 토론회 시작에 앞서 "허심탄회하게 모든 걸 논의하자"는 열린 자세를 보였지만 천안함 문제가 나오자 "우리 소행이 아니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해 논의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게다가 남측 참석자들이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북측 태도를 현장에서 취재 중인 한국 특파원들에게 전한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자 북한 대표들은 매우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남측 패널들은 토론회 첫날인 17일 공식 만찬을 마치고 미국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 만났다. 복수의 참석자는 '북한이 천안함 사건에 대해 이왕 유감을 표명한 상황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명확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하라'고 토론회에서 주문했는데도 북측이 강한 불만 제기 등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연합뉴스는 이런 소식을 한국 언론으로는 유일하게 보도했다. 그러자 북측은 "토론 내용은 비공개인데 누가 말했느냐"고 주최 측에 강력히 항의했다.

북측의 한 인사는 회의장 앞 복도에서 우연히 만난 기자에게 "도둑질을 안 했는데 앞으로 도둑질 안 하겠다고 하라는 것이냐"고 반문하면서 "누가 이런 얘기를 했는지 밝히라"고 다그쳤다.

그는 취재원을 밝힐 수 없다는 기자에게 "취재원 보호는 이해한다"면서 "어찌 됐든 지금 우리가 안에서 발설자를 색출 중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이래서 남조선은 안에서 새는 쪽박이 밖에서도 샌다는 말을 듣는 거야"라고도 했는데, 이는 대북 문제를 놓고 반목과 대립에 휩싸인 한국 사회의 갈등상이 토론회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는 비아냥거린 셈이었다.

리종혁 부위원장도 기자에게 면담을 요청해 "매우 민감한 시기에 이런 보도가 (남북) 관계를 망칠 수 있다. 당신이 그런 책임을 질 수 있느냐"고 따졌다.

이에 대해 일부 남측 대표들은 "북측이 천안함 사과 요구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은 사석이었고, 그것도 북측이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서 생긴 일 같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연합뉴스는 이런 전언을 추가한 종합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북측은 이후 리 부위원장에 대한 연합뉴스 기자의 인터뷰 시도를 가로막고 폭언을 퍼붓었고 이에 기자도 강력 항의하면서 고성이 잠시 오가기도 했다.

토론회장 주변에서는 이런 북측의 태도를 놓고 "항상 그렇듯이 윗선을 의식해 과잉행동을 하는 것 같다"는 분석이 나왔다.

천안함 문제가 이번 토론회의 주요 의제이자 관심사였지만 북측은 북미관계에 더욱 신경을 쓰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리 위원장은 유일하게 미국 CNN과 단독 인터뷰를 했다. 이 때문에 북측이 북미 대화 속개를 앞두고 이번 토론회를 탐색전 차원으로 활용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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