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알자] 청신경초종

입력 2011-09-26 07:58:58

나이 들어 잘 안들리나 싶었는데, 뇌신경에 종양이…

MRI로 본 종양(화살표)
MRI로 본 종양(화살표)
수술은 청신경초종 종양을 직접 확실히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수술은 청신경초종 종양을 직접 확실히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박명자(가명'61) 씨는 최근 2, 3년간 오른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동네 이비인후과 의원 여러 곳을 다녔다. 하지만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대학병원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처음엔 귀가 어두워 잘못 들은 줄로만 알았다.

그저 나이가 들어 귀가 어두워진다고 생각했던 박 씨. 어렸을 적 다른 사람들처럼 여름에 물놀이를 하고 나면 귀에서 물이 나오고, 종종 중이염도 앓았기 때문에 가벼운 귓병의 후유증 정도로만 여겼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얼굴을 만질 때 오른쪽 볼에 닿는 느낌이 이상하고, 잇몸과 혀의 감각도 떨어졌다. 결국 이상하게 여기던 박 씨는 대학병원을 방문하게 된 것.

정밀한 청력검사를 하고, MRI 촬영까지 한 결과, 단순한 귀의 문제가 아니라 머릿속의 듣는 뇌신경(청신경)에 3.5㎝가량의 큰 종양이 생겨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 즉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박 씨는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 수십 가지에 이르는 뇌종양

신경외과 의사로부터 '뇌종양' 진단을 받는 순간, 모든 사람들은 눈앞이 캄캄해지며 당장 얼마나 더 살 수 있는 지 걱정하게 된다. 실제 어떤 종류의 종양이건 몸에 좋은 종양은 없다. 특히 뇌에 생긴 종양의 경우,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이 불치의 병을 앓을 때 흔히 등장하는 질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뇌종양'은 뇌 또는 뇌 주위에서 생기는 모든 종양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이 때문에 보다 세분해서 알아봐야 한다. 복부에 생기는 암도 위암, 췌장암, 대장암처럼 다양하기 때문이다.

뇌종양은 매우 다양하고, 같은 진단명이라도 위치나 크기에 따라 치료법이나 결과가 전혀 다르다. 비교적 양성인 뇌종양부터 암이라고 불리는 악성 뇌종양까지 수십 가지 종류가 있기 때문. 그나마 비교적 흔한 뇌종양은 '신경교종' '수막종' '뇌하수체 선종' '청신경초종' 등이 있다. 신경교종 중에 '교모세포종'은 치료도 극히 어렵고 생존기간도 장담하기 힘들만큼 악성이다. 하지만 뇌종양은 같은 병명이라도 환자마다 발생 위치와 증상이 다르기 때문에 섣불리 단정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 쉽게 짐작할 수 없는 청신경초종

앞서 박명자 씨의 경우는 뇌종양 중 '청신경초종'의 대표적 사례. 뇌신경(청신경)에서 발생하는 양성 종양으로 흔한 질환은 아니다. 양성은 악성과 달리 재발이나 전이가 거의 없고, 종양 덩어리가 커지는 속도도 느리다. 하지만 청력이 떨어지는 원인 중에 청신경초종인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초기 진단은 쉽지 않다. 따라서 혹이 상당히 커진 뒤에 병원을 찾는다.

종양이 비교적 천천히 자라다 보니 처음에는 한쪽 귀에서만 마치 가는 귀가 먹듯 조금씩 청력이 떨어지고, 귀에서 소리가 나거나(이명), 가끔씩 어지럼증이 나타나는 증상이 고작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종양이 커지면 청력은 더 떨어진다.

급기야 청신경 앞에 있는 다른 신경을 눌러 얼굴, 잇몸, 혀의 감각까지 무뎌지게 된다. 나중엔 소뇌를 압박해 어지럽고 걸음걸이가 이상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상식과 달리 뇌종양의 대표 증상으로 알려진 심한 두통이나 구토는 상당히 병이 진행한 후에야 나타난다. 이 때문에 앞서 증상만으로는 뇌종양을 의심하기는 힘들다. 한마디로 쉽게 짐작하기 힘든 뇌종양인 셈.

◆ 뇌 CT나 MRI 통해 조기 검진

인구 10만 명당 2, 3명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수명이 늘고 검진방법도 발달하면서 실제 국내에서 청신경초종 환자 비율은 더 높을 것으로 추산된다. 노인성 청력감퇴와 구별하기 힘들고, 흔히 중이염 등 귓병을 앓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처음에 이를 구분해 내기는 어렵다. 다만 아래와 같은 증상을 경험한다면 한 번쯤 청신경초종을 의심해야 한다.

일단 30대 이전 젊은 층에는 잘 생기지 않는다. 나이가 많을수록 발생빈도는 높아진다. 노인성 난청은 양쪽 귀에 오는 경우가 많지만 청신경초종은 대부분 한쪽 귀에만 발생한다. 한쪽 귀의 청력만 떨어지면 스스로도 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흔히 TV 소리를 점점 크게 하는 것이 청력저하의 대표적 증상이라고 하지만 반대편 귀가 잘 들릴 경우에는 이마저도 알기 어렵다. 오히려 휴대폰이나 전화를 사용할 때 유난히 어느 한쪽 귀로는 잘 들을 수 없다면 청력저하를 의심해야 한다.

종양이 상당히 커지면 박 씨처럼 볼이나 잇몸, 혀의 감각이 떨어지게 된다. 다행히 건강검진에서 뇌 CT 또는 뇌 MRI 검사를 포함하는 경우가 많아 아직 청력에 큰 이상이 없는 단계에서도 작은 크기의 청신경초종이 발견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 작은 종양은 방사선 수술로 치료

치료 방법은 청력이 얼마나 남아 있느냐와 종양이 얼마나 큰가에 달려 있다. 특히 종양 크기는 중요한 기준이다. 약을 복용해서 종양의 성장을 멈추게 하거나 작게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겠지만 일단 청신경초종에 듣는 약은 없다. 따라서 현재 치료법은 직접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과 종양을 더 자라지 않게 방사선을 쪼이는 '방사선수술'로 나뉜다.

'방사선수술'이란 암 환자에게 매일 일정량을 쪼이는 '방사선치료'와는 다르다. 정상 뇌에는 해가 거의 없도록 많은 양의 방사선을 종양에만 쪼여서 더 이상 커지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치료 시간은 대개 하루 정도면 충분하다.

이런 말을 듣고나면 두개골을 열고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 결국 모든 청신경초종을 방사선수술로 하면 좋을텐데 실제로 그럴 수가 없다. 종양의 크기가 관건이다. 방사선수술이 가능한 것은 대개 작은 크기의 청신경초종이다. 아울러 종양 내부가 딱딱한지, 물집같은 부분이 없는지 등도 방사선수술 가능 여부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수술은 전신마취라는 어려움이 있지만 종양을 직접 확실히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수술현미경과 신경감시장치 등의 수술장비의 발전으로 위험도는 예전보다 매우 낮다. 대학병원 신경외과 뇌종양 전공 의사들이 주로 치료한다. 경북대병원 황정현 교수, 영남대병원 김오룡 교수, 계명대 동산병원 김일만 교수, 대구가톨릭대병원 여형태'김기홍 교수, 대구파티마병원 강동기 과장 등이 있다. 방사선수술 장비로는 경북대병원에 감마나이프가 설치돼 황성규, 박성현 교수가 수술을 맡고 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도움말 = 경북대병원 신경외과 황정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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