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원광대 외래교수
추석 명절을 지나면서, 집안일의 분담문제에 대한 불평과 논쟁이 뜨겁다. '명절 증후군'이라는 병이 여성, 특히 젊은 여성들을 강타하고 있다. 여자들만 너무 고생하니 참을 수 없다고 한다. 실제로 명절 직전에 습관적으로 특정한 질병현상을 보이는 여성도 있는 모양이고, 심하게는 명절을 지나 남편과의 불화로 이혼하기도 한다니 심각한 수준이다.
쉰이 넘은 세대들은 젊은이들이 왜 이런 증후군에 시달리는지 고개를 갸웃하기도 한다. 그들은 제사 며칠 전부터 준비를 해야 했다. 떡 만들고 전 부치는 일을 웬만큼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요즘과는 다른 시대를 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4대 봉사를 법도에 맞게 하나도 생략함 없이 척척 잘도 해냈다.
이렇게 제사에 대한 의식이 세대 간에 크게 차이 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다. 많은 여성들이 직장생활을 하게 되고, 또 유복하게 자라서 어려운 일을 참기 힘들어하는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제사를 지낼 마음이 줄어든 탓이다. 젊은이들도 교회나 성당, 절에 가서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빌고, 자식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는 의식은 성가시게 생각하지 않고, 더러는 가족을 뒤로 한 채 봉사활동도 열심히 펼치면서도, 정작 제사에는 그렇지 않다. 결국 제사를 대하는 의식이 문제이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쓴 계녀서(戒女書)가 있다. 일찍 어머니를 여읜 채 자란 맏딸을 안동 권씨 권유(權惟)에게 시집보내면서 준 지침서이다. 부녀자로서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야할 도리가 20개 항목으로 정리되어 있는데, 딸에 대한 아버지의 정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글이다. 그 가운데 제사 받드는 도리를 적은 내용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가르침이 될 만하다.
"①제사는 정성으로 정결하게 하며 조심하는 것이 으뜸이니, ②제수 장만할 때 미리 괜한 걱정을 하지 말고, ③없는 것을 구구하게 얻지 마라. ④제수는 쓸 만큼만 장만하고, ⑤뒤에 올릴 제사에 부족할 것을 생각하여 풍족하고 박함이 너무 뚜렷하지 않게 하여라."
제사가 드는 달 초반부터 걱정을 시작하고, 과분하게 많이 장만하느라 경제적'시간적'신체적으로 시달리는 주부들이 명심해야할 일이다. 나를 예뻐해 주신 시아버님상을 흡족하게 많이 차리다가 보면, 다음에 드는 다른 제사에는 소홀할 수도 있다. 특히 보릿고개 즈음에 드는 제상에는 더욱 그러했다. 그러니 미리미리 준비하고 절제하여 이런 불균형을 경계하라 이른 것이다.
제사를 아름다운 효의 극치라 하여, 제사를 흉례가 아닌 길례로 여겼다. 자손이 있어 조상을 받들 수 있으니, 이 어찌 다행스럽고 즐거운 일이 아니리요. 이는 축제다. 분에 넘치는 준비를 하느라 걱정하지 말고, 나에게 맞는 축제를 열어가는 것은 어떨까. 조상과 자손세대를 이어주는 며느리이자, 아내요 어머니인 내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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