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서 시집왔어요. 대구서 식당냈어요"

입력 2011-09-07 09:37:51

결혼이주여성들 뭉쳐, 태국음식점 개업 화제

6일 오후 태국 다문화가정 여성과 인권센터 관계자들이 경북대 북문 부근에서 태국 전통 음식점
6일 오후 태국 다문화가정 여성과 인권센터 관계자들이 경북대 북문 부근에서 태국 전통 음식점 '쿤' 개점식을 열고 참석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맛있는 태국 음식 먹으러 오세요~."

6일 오후 7시 대구 북구 산격동 경북대 북문 인근 한 상가 3층. 50㎡ 남짓한 공간을 가득 채운 이국적인 음식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태국어로 '당신'을 뜻하는 '쿤'이라는 간판을 단 이곳은 얼마 전 문을 연 태국요리 전문점.

가게의 뒤늦은 개업식이 열린 날. 중국 전통의상인 치파오를 곱게 차려입은 탕추이홍(44'여) 씨는 입구에서 능숙한 한국말로 손님들을 안내했다. 베트남에서 온 팜티검장(26'여) 씨는 개업 떡을 손에 들고 인근 상가에 다니느라 분주했다.

안에서 음식 나르기에 여념이 없던 중국 출신 왕위(30'여) 씨는 "집안일만 하다가 밖으로 나와 일을 하니 가슴이 확 뚫린 기분"이라며 "대구로 시집 온 이주여성들이 이곳에 모여 함께 일하고 수다도 떨고 미래도 고민할 수 있게 됐다"고 활짝 웃어보였다.

대구의 결혼이주여성들이 모여 음식점을 열었다. 함께 음식점을 운영하며 '제2의 고향' 대구에서 안정된 삶을 살아갈 희망을 스스로 쌓고 있는 것이다. 이주여성 주부들은 과연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음식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는 음식점 창업으로 이어졌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는 올 초 한국여성재단의 이주여성 일자리 공모사업에 창업계획서를 냈고, 여기서 채택된 덕분에 음식점을 열게 됐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강혜숙 대표는 "어떤 음식을 팔아야 할지 고민하던 중 '이주여성들이 가장 자신 있는 고향 음식을 만들어 팔자'는 의견이 나와 태국요리를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주방장은 태국 출신 니감시리 스리준(32'여) 씨가 맡았다. 그는 남편과 결혼하기 전 태국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했다. 하지만 음식점을 운영한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요리 솜씨가 뛰어났다. 결혼 후 한국요리를 금방 익히는 자신을 보며 요리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니감시리 씨는 "한국인 입맛에 맞지만 태국 전통을 최대한 살리는 요리를 선보이고 싶다"며 "우리 음식점이 전국에서도 유명한 맛집이 되면 동료 이주여성들의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라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직 음식점 운영에 서투른 이주여성들을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선 이도 있다. 대구에서 4년여간 지낸 유학생 손시즌(25'여'중국) 씨는 "이주여성들이 미숙할 수 있는 손님 응대나 카운터 업무를 임시로 맡았다"며 "이주여성들과 어울려 지내다 보니 오랜 유학생활의 외로움도 잊을 수 있다"고 환하게 웃었다.

지난달 22일에 문을 연 이곳에는 벌써 인근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은정(22'여'경북대) 씨는 "태국 전통 향신료를 쓰면서 한국인 입맛에도 딱 맞는 것을 보면 요리 솜씨가 상당한 것 같다"며 "인테리어도 여느 카페 못지않게 예쁘고 아기자기해 친구들과 자주 온다"고 말했다.

'쿤'은 앞으로 지역에 분점도 내고, 그래서 더 많은 이주여성을 채용하는 것이 목표다. 강혜숙 대표는 "음식점 창업이 지역 이주여성들의 안정된 생활에 도움을 주는 성공모델이 되길 바란다"며 "이주여성들도 경제력이 있어야 사회 구성원으로 당당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데 우리 음식점이 그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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