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산책] 무신론에 대한 변명

입력 2011-09-07 07:39:11

고등학교 시절 시간은 돌처럼 정지되어 꿈적도 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 시절은 존재와 신에 대한 의문과 갈증으로 절망의 낭하처럼 느껴졌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외할머니 댁에서 더부살이를 하던 어머니는 당신의 아들이 교회라도 충실히 나갔으면 하셨다. 출가외인인 딸이 자식들을 데리고 집으로 다시 돌아온 것을 못마땅해 하는 당신 어머니의 심사를 누그러뜨리는 데는 그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끝내 교회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누님들이야 어린 나이에 이미 생활전선에 뛰어든 관계로 할머니의 이해를 구할 수 있었지만 철없는 외아들은 늘 교회에서 사탄(?)의 꾐에 빠져 불경한 질문을 해대기 일쑤였다.

결국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는 창세기의 구절에 대한 질문이 유일신을 부정하는 사탄의 것이 되었을 때, 교회와 할머니는 어린 양을 차마 용서하지 못하고 내치고 말았다. 대학에 들어와 소위 운동권이 되고서는 할머니와의 관계는 더욱 틀어지고 말았다. 실향민이었던 외가 식구들에게 소위 운동이란 것은 빨갱이 노름이었고 사촌들과의 만남마저도 제재를 당하곤 했다. 그것은 악한 본성에 물들 수 있다고 생각한 어른들의 결정이었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마귀와 마르크스를 동일한 인물로 생각하신 할머니를 비난하거나 설득하지 못한 것을 자책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오히려 순자(荀子; BC 298?~BC 238?)가 주장한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정의를 믿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비록 무신론자가 되었지만 신이 있다고 믿었던 어린 날이 적어도 보상을 받으려면 성악설에 이르러야 할 것 같다고 느낀다. 신이 있다면 세상이 이토록 불공평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문에 대한 적확한 답변은 애초에 신이 인간을 사악하게 만들었다는 이유 외에는 아무런 답이 없지 않을까 싶다. 때로는 인간의 헌신적인 희생이 성악설에 기운 무게 추를 흔들기도 하지만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탐욕과 포악과 비굴을 볼 때 그것을 뒤집어 놓기는 힘들다.

젊은 날, 종교가 가지는 나눔이 약탈을 숨긴 선동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인간이란 교육을 통해서 변하기 마련이고 그 변화란 것마저도 내재된 본성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아직도 유효하다. 거짓된 자들이 성경을 인용하며 자신들을 합리화하고 있는 세상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은 선한 자보다는 악한 자에게, 가지지 못한 자보다는 가진 자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단 것이 인간이라면 그 인간을 만든 신의 존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전태흥(미래티엔씨 대표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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