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들의 경기 참관기] 3)박정남 시인의 남자 100m

입력 2011-08-30 07:22:36

볼트의 아킬레스건,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나

박정남 시인
박정남 시인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 일어나서 달려야 한다. 달리지 않으면 낙오자가 되고 죽는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아니, 인간의 생존 본능은 육상경기와 매우 닮았다. 대학 1학년 때 과별 등반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팔공산 등반을 마치고 동촌에서부터는 경북대 사범대 건물 앞까지 달려와야 했는데, 선배 둘이 옆에서 구령을 붙여주며 같이 뛰었는데도,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그 힘든 속에서도 자꾸만, '이렇게 온 힘을 쏟아부으면 앞으로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는 각오 같은 것이 새겨졌다.

TV로 여자 마라톤을 보고 남자 20㎞ 경보를 보았다. 경보는 빠르게 걷는 시합, 머리가 위아래로 움직여서도 안 되고 발바닥이 땅에 붙게 걸어야 한다. 이들 경기는 대구 도심에서 펼쳐져, 대구의 녹색 도심이 세계에 알려지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따금 신천이 보이기도 하고, 푸른 가로수의 잘 닦여진 거리가 선수들의 질주하는 등 뒤로 시원하게 펼쳐지기도 했다. 한두 방울 차창에 빗방울이 비치더니 이내 사라지고 비도 오지 않았다. 25일 대구향교에서 청명한 날씨를 비는 기청제까지 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대구 세계육상권대회 경보 남자 20㎞에서 김현섭이 6위로 한국 첫 '톱10'에 진입해 한국 경보의 소원을 이루고 가능성을 열었다. 그런데 우리 선수는 너무 연약했다. 1위를 한 러시아의 보르친 등 외국 선수들은 몸집도 크고, 여유가 보였는데, 우리 김현섭 선수는 그만 골인선을 넘어오자 쓰러지고 말았다. 안타까웠다.

오후 시합을 보기 위해 범물동에서 출발하는 무료 순환버스를 타고 대구스타디움으로 향했다. 성암산 아래 몇 겹의 타원형을 그리며 거대하게 앉아 있는 건물, 많은 관람객들, 자녀들을 데리고 나온 아빠들, 환한 표정의 외국인들이 세계 대회를 실감나게 했다. 우선 이동우체국이 눈에 띄어 들어갔더니, 기념우표는 다 팔리고 없어 겨우 구경만 했는데, 달리기와 장대높이뛰기를 수묵화 느낌의 크로키 수법으로 표현한 2종 우표로 140만 장을 찍었다고 한다. 봉사만 할 뿐, 구경을 못하는 자원봉사자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스타디움을 에워싸고 펼쳐진 나지막한 솔밭들이 짙푸르게, 아주 건강하게 눈에 들어왔다. 조선의 소나무는 우리 조선인의 건강한 모습. 우리 대구인의 강인한 정신, 누가 우리 대구인을 보수적이고 무뚝뚝하다고 하는가. 그 소나무 대열을 따라 일렬횡대로 서 있는 참가국 202개의 국기들이 울긋불긋, 아주 생동감있게 눈에 들어왔다.

3문 A석 18블록, 내 자리. 일요일 오후여서인지 관중석이 꽉 찼다. 창던지기, 원반던지기, 어떤 선수는 손뼉을 쳐달라고 주문을 해서 신나게 쳐주기도 했지만 전광판으로 이따금 고개를 돌려 보아야 보이는 멀리뛰기는 거리가 멀어 실제로는 보이지 않아 답답했다. 하기만 모든 경기의 중요 장면은 전광판으로 보고 즐겼다고 하는 것이 정직할 것이다. 하지만 10,000m, 1,500m, 400m, 100m 달리기를 할 때 트랙에서 눈을 떼지 못함은 왜일까? 달리기는 육상의 꽃이라서일까? 꼴찌를 보며 더욱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 그 열렬한 응원 중에서도 파도타기는 흥겨웠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출발 직전 춤추며 한바탕 쇼, 세계의 주목을 받던 단거리 황제 우사인 볼트가 부정출발로 실격을 당해, 요한 블레이크가 9초92로 금메달을 땄다. 볼트의 아킬레스건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일까? 모든 게 순간의 결정이다. 그건 실수도 아니고, 몸의 예감에 사로잡혔던 것. 준결승전에서부터 어떤 암시가 온 것을 그는 눈치 채지 못함이 아닐까? 요한 블레이크는 아주 신중한 선수라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서 보는 밤의 대구스타디움은 아주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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