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적인 서법, 조형·구도까지 계산 추사의 거침없는 예술 세계 엿보여
5월에 개관한 대구미술관은 주제전으로 '기(氣)가 차다'전을 열고 있다. 한국 현대미술을 서양의 잣대가 아닌 우리의 시각에서, 전통과 철학을 배경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 주제이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18세기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로부터 김아타에 이르기까지 40명 작가들의 어울림이 200년의 세월을 뛰어넘고, 작품들 사이 이야기는 미술관의 구조적 환경과 관람객들의 다양한 생각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번 전시의 중심이 되는 것은 바로 추사 김정희의 작품이다. 전시되고 있는 작품 '영산'(詠山)을 살펴보면, 두 개의 글자를 머릿줄에 맞추어 쓰고 영(詠)의 '言'변은 위획을 가장 길게 그은 다음, 차례로 3획을 쓴 후 '口'자 또한 닫지 않고 열어 놓았다. '山'자 또한 중획을 길게 쓰는 법을 버리고 좌우의 획과 높이는 같되 그 구성은 모두 다르게 하는 조형적 특성을 살려 놓았다. 열려 있는 '口'자는 작품의 비어 있는 공간, 즉 여백의 가치를 높임으로써 비워진 것이 비움이 아닌 채워짐의 공간이며 자유로운 공간 운영과 관련된 동양적 사고를 엿보게 한다.
추사의 글씨는 '괴(怪)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조형적 의미에서의 괴함을 넘어서 매일의 글쓰기와 각고의 삶을 통해 얻어진, 법을 뛰어넘은 자유로운 세계를 말한다. 그래서 그의 글씨에는 힘이 있고 순박하면서도 고졸(古拙)한 멋이 풍겨난다. 이는 전시에서 마주하게 되는 한국 현대미술작가들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으로 우리의 미학 속에서 추사가 이루어낸 높은 경지로 이어지는 미적 태도의 연결성을 볼 수 있다.
권성아 대구미술관
어소시에이트 큐레이터
▶김정희-영산, 19C, 종이에 먹, 28×80㎝, 일암관 소장, 사진저작권 이만홍
▶~9월 25일, 대구미술관 '기(氣)가 차다'전, 053)79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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