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청년들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치고, 나라가 인정하는 신들을 부정하였을 뿐 아니라, 색다른 신을 섬기기 때문에 죄인이다'는 공소를 당해 법정에 선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지혜를 가르쳐서 기존의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동등하게 만들고, 정치가를 만나서는 '이 사람이나 나나 좋은 것(善)과 아름다운 것(美)에 대하여 전혀 아는 바가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이 사람은 자기가 모르면서도 아는 듯이 생각하고 있고, 나는 모르고 있으므로 분명히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이 사람보다 더 지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함으로써 그들에게 미움을 얻었기 때문에 공소되었다"고 변명한다. 그렇지만 그는 유죄 판결을 받고 독약을 마신다.
요즘 내가 너무 무식하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어떤 모임에서 장출혈성 대장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참석자들은 의사인 내가 그것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렇지만 그에 대해 'E. coli'의 한 종류로 감염되면 혈변과 신부전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내 지식의 전부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나도 젊은 시절부터 무식하다고 자책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다. 한때는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똑똑하고 수술도 잘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을 때도 있었다. 내가 무식한 의사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 준 이는 이제는 고인이 된 선친이었다.
1980년대 초만 해도 의사 수가 적었고 의과대학 교수는 더욱 드물었다. 어려운 형편에 아들을 의사로 만들고 더구나 의과대학 교수가 되었다고 하니 선친은 아들을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느 날 여름휴가를 얻어 고향집에 갔다. 저녁식사를 마치자 동네 어른 분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이봐, 무릎이 이렇게 아픈데 어떻게 하면 낫지?" "이봐, 명치끝이 항상 더부룩한데 어떤 약을 먹으면 낫지?" "글쎄요. 저는 신경외과 의사라서…. 무릎 아픈 분은 정형외과에 가서 진찰을 받아 봐야 될 것 같고, 명치끝이 더부룩한 분은 내과에 가서 진찰을 받아 봐야 될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자랑스러움으로 빛나던 선친의 낯빛은 조금 지나자 곤혹스러운 빛으로 바뀌더니 얼마 후에는 선친의 모습 자체가 그곳에서 보이지 않았다.
내가 부족한 의사라는 것을 그때 잠시 깨달았었다. 그렇지만 다시 내가 최고 의사인 양 행동하다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다시 부족한 의사라는 것을 진심으로 깨달아 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하나씩 깨우쳐 가는 과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이 무식하다는 것을 알고 있듯이 나도 나 자신이 무식하다는 것을 알아 가고 있는 것 같다.
임만빈 계명대 동산의료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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