孝 흐르는 마을들, 淸白 가르치는 강물
어느 지역인들 수백 년 이상 흐름의 역사를 간직하지 않았으랴. 역사 속에 인물이 나고, 인물과 더불어 유적지가 생겨남은 당연하다. 길안천은 여느 강줄기가 만들어 낸 역사문화와 달리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고, 사람이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길안천은 발길 닿는 곳마다 때묻지 않은 자연이다. 눈길 가는 곳마다 절경이다. 하지만 길안천은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지만, 마음으로 수백년을 흘러 사람에게 전하는 가르침이 있다.
◆'효'(孝)가 흐르는 길안천
청송군 현서면 월정리 침류정(枕流亭'경북도문화재자료 제266호)과 안덕면 신성리 방호정(方壺亭'경상북도민속자료 제51호), 고와리 백석탄(白石灘) 등 3곳의 길안천 대표적 문화'관광지에는 '효'(孝)가 오롯이 담겨 있다. 절벽과 수려한 주변 자연경관을 차지하고 앉은 두 정자는 눈으로 보는 '감탄'보다는 마음으로 전하는 '감동'을 선사한다.
침류정은 조선 중기 학자 김성진(金聲振'1558~1634)이 17세기 무렵 지었다. 동쪽에는 서당으로 사용되던 오월헌이 있다. 마당에는 350년 정도로 추정되는 높이 약 10m, 가슴 높이 지름이 약 80㎝인 향나무(경북도 기념물 제108호)가 서 있다.
이 정자를 지은 김성진은 1592년 임진왜란이 나자 노모를 모시고 피란살이를 했다. 전쟁이 끝나자 이곳으로 돌아와 정자를 지어 후학을 가르치는데 전념했다. 당시 김성진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노모의 불편함을 보살피는 등 후학들에게 유학의 본보기를 실천한 인물로 전해오고 있다.
방호정에는 조준도 선생의 생모 안동권씨에 대한 애틋한 효심이 깃들어 있다. 광해군 11년(1619)에 선생은 먼저 돌아가신 어머니를 잊지 못해 묘가 바라보이는 절벽 위에 방호정을 세웠다.
이런 뜻에서 처음 정자 이름을 '사친당'(思親堂), '풍수당'(風水堂)이라고 했다 하니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는 조준도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알 수 있다.
정자의 바닥모양은 ㄱ자형이나 강물에 접한 절벽 쪽 온돌방 위로 맞배지붕을 내고 풍판을 달아서 지붕 모양은 丁자형이다. 절벽 쪽에 마루방 2칸과 온돌방 한 칸, 뒤쪽에 부엌과 한 칸짜리 온돌방이 더 있다. 이곳에선 이준'조형도'권익'신집 등의 학자들이 모여 학문을 논하고 산수를 즐겼다. 정자 안엔 '방호문집'의 판각이 보관돼 있다.
신성리 진골 뒷산으로부터 뻗어 내린 산줄기가 길안천으로 몸을 숨기기 전에 가파르게 깎아지른 절벽 위에 앉은 품위가 제법이다. 정자 아래에는 수령이 300~400년은 족히 될 듯한 거대한 느티나무 두 그루가 버티고 서 햇볕을 가려준다.
안동사람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1538~1593)은 일찍이 이곳에 들러 '산골짝은 첩첩이 겹쳤는데 시냇물은 몇 굽이를 흐르느냐. 외딴 마을은 골짝 어귀에 있고 높은 정자는 바위머리에 솟았다'고 노래했다.
◆'청백'(淸白)을 가르치는 강
길안면 묵계리에 자리한 '묵계서원'(默溪書院'경북도민속자료 제19호)과 '안동김씨 묵계종택'(安東金氏默溪宗宅), '만휴정'(晩休亭'경북도문화재자료 제173호)은 안동김씨의 상징적 역사 인물인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1431~1517) 선생이 평생 실천한 '청백'(淸白)과 '공근'(恭謹)한 삶이 전해온다.
안동~영천간 국도 35번 옆으로 길안천을 끼고 울창한 소나무와 붉은색 꽃망울을 터트린 배롱나무(백일홍)가 빼곡한 묵계1리. 이곳에는 보백당 김계행 선생의 종택과 선생을 모신 묵계서원, 그리고 신도비와 비각이 아름답게 서 있다.
종택 맞은편 길안천을 건너면 솔숲이 우거지고 석벽으로 둘러싸인 틈새로 폭포수가 그림같이 떨어지는 '송암'(松巖)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곳 초입에 살짝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만휴정'. 날아오를 듯 경쾌한 정자 건물은 물론 산과 계곡수가 알맞은 높이로 떨어지며 내는 물소리와 물보라도 일품이다. 문화재청은 최근 보백당의 청빈한 삶이 녹아 있는 만휴정 일대 원림을 '국가문화재 명승'으로 지정했다.
만휴정 뒤로는 계명산, 앞으로는 금학산과 황학산이 겹겹으로 둘러싸고 길안천(吉安川) 명경지수(明鏡止水)까지 유유히 흘러 세상의 한 점 티끌도 없는 듯한 신선세계를 펼친다.
'내 집에는 보물이 없다(吾家無寶物), 다만 있다면 청백이 있을 뿐(寶物惟淸白)'. 일찍이 보백당 김계행 선생이 읊은 시구의 일부다. 선생은 진작부터 보백당이라고 자호한 뒤 날마다 조용히 그곳에서 성현의 학문을 탐구하고 가문의 앞날을 준비하고 후진을 양성하며 만년을 보냈다.
선생이 이곳에 터전을 마련한 것은 30대부터이며, 학문을 좋아하고 자연을 벗하고자 하는 선생의 지향을 드러낸 것이다. 선생이 자손들에게 줄곧 경계한 내용을 보면 "청백(淸白)을 집안에 전하고, 공근(恭謹)을 대대로 지킬 것이며, 효우(孝友)와 돈목(敦睦)은 조상들의 가르침이니라"였다.
보백당은 문중의 큰 어른이었다. 선생이 81세 때 내외 종친들이 모여 헌수하는 자리에 내외 자질들 중 대소과에 합격한 이가 모두 10여 명이나 됐다. 또 현직에 있는 이가 7명이었다고 할 정도였다.
이 같은 가문의 영광에 대해서도 선생은 "너희들이 잇달아 과명(科名)에 오른 것은 퍽 다행한 일이다. 이 고장 사람들이 더러는 나를 복이 많다고도 한다. 그러나 나는 집안이 번창한 것이 도리어 두렵다. 너희들은 이를 명심해 스스로의 몸가짐을 삼가고 사람들과 만날 때도 정성을 다해서 경박한 일로서 죽어가는 나에게 욕을 끼치지 말도록 하여라"라는 가르침을 남겼다.
이 말씀은 지금도 '지신근신(持身勤愼), 대인충후(待人忠厚)'라는 여덟 글자로 남아 만휴정에 걸려 있는 등 후손들도 그 뜻을 기려 선생의 가르침을 현판에 새겨 정자 마루에 높이 걸어두고 있다.
◆'휴'(休)를 전해주는 물줄기
길안천 물줄기마다 한여름철이면 일상의 탈출을 꿈꾸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명덕교'만음교'송사교'대사교'신성교 등 강줄기를 가로질러 세워진 다리 아래에는 강수욕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빼곡하다. 맑디맑은 물은 바닥까지 훤히 비추고 대부분 무릎 아래 정도 깊이의 얕은 강에다 절벽과 소나무 등으로 절경을 이룬다.
사람들은 길안천 곳곳에서 복잡한 도시와 바쁜 일상을 벗어나 몸과 마음을 쉬게 한다. 이처럼 길안천은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안온함, 휴식 같은 존재다.
안동시가 1998년 사업비 38억원을 들여 안동시 길안면 고란리 계명산(해발 520m) 자락에 247만㎡(75만평) 규모로 조성한 계명산자연휴양림. 이곳은 숲속의 집 2채(9인용,14인용)를 비롯해 산림휴양관 5실, 황토방 3실(7인용)과 야영데크 22곳을 갖추고 있어 여름철이면 최고 휴양 장소로 인기를 얻고 있다.
휴양림 인근에 길안천과 천지갑산, 용계은행나무, 지례예술촌, 임하댐과 안동댐, 하회마을 등 유명 관광지가 산재해 있어 휴양과 관광을 연계한 테마관광 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안동시는 해마다 늘어나는 휴양객들로 인해 길안천이 몸살을 앓으면서 수년 전부터 마을 주민들을 중심으로 환경감시 활동과 정화활동, 휴양객들의 자발적인 쓰레기 되가져가기 운동 등 맑고 깨끗한 길안천 가꾸기에 나서고 있다. 이 때문에 길안천은 여전히 자연이 선물한 그대로의 청정 모습을 휴양객들에게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안동시는 경북도가 추진하고 있는 '고향의 강' 정비사업에 길안천을 추천해 놓고 있다. 안동시 길안면 천지리에서 임하면 금소리까지 4.3㎞의 길안천에 265억여원을 들여 생태공원과 하상정비, 자연형습지 식물원 조성을 통한 생태복원, 생태문화탐방로, 체력단련장 등 다양한 친수공간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다.
안동시 김선택 재난방재과장은 "길안천은 안동지역 대표적 자연친화적 하천으로 다양한 생태환경 조성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수많은 휴양객들이 맑고 깨끗한 길안천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수 있도록 하천을 가꿀 계획"이라고 말했다.
청송'김경돈기자 kdon@msnet.co.kr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여행정보
▶교통
수도권→ 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 중앙고속도로(대구 방면)→ 의성 나들목→ 5번 국도→ 의성→ 912번 지방도→ 현서→ 안덕→ 방호정→ 신성계곡. 수도권에서 4시간, 광주에서 4시간30분, 부산에서 3시간 소요.
▶숙식
청송 자연휴양림 : 부남면 대전리 31번 국도 상의 삼자현 고갯마루 북쪽. 054)872-3163. 산막 사용료는 3만5천~6만원.
방호정식당 : 054-872-0528, 신성식당 : 054)872-6298. 닭백숙(3만원)과 매운탕(3만원)
주완산온천관광호텔 : 청송군 청송읍 054)874-7000. http://www.juwangspahotel.co.kr
▶관광문의 : 청송군청 문화관광과 054) 870-6230,
안덕면사무소 054) 872-0005
http://www.tour.cs.go.kr/main
▶교통
영동고속도로 → 만종JC → 중앙고속도로(남원주IC) → 영주 → 서안동IC에 이르거나 중부내륙고속도로 → 충주 → 점촌함창IC → 문경(3번국도) → 예천(34번국도) → 안동에 이른다. 안동시내에서 영천 방면 국도 35번을 타고 가면 임하, 길안 묵계리에 이른다.
▶숙식
계명산 자연휴양림 : 안동시 길안면 고란리 054)822-6920. 사전 예약해야 이용 가능함. 길안면 천지리 길안면 소재지에 식당과 여관 등 숙박시설이 있다. 만휴정과 10여분 거리에 있다.
안동파크호텔 : 안동시 운흥동, 054)853-1501(관광공사 지정 굿스테이)
지례예술촌 : 안동시 임동면, 054)852-1913, http://www.chirye.com
▶관광문의 : 안동시청 체육관광과 054)840-6393.
길안면사무소 054)822-2005.
http://www.tourand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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