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책] 고령화가족/천명관 지음/문학동네 펴냄

입력 2011-08-06 07:47:05

"닭죽 먹으로 올래?" 인사처럼 건넨 엄마의 말에 득달같이 달려가는 마흔여덟의 중년 남자 오인모. 영화감독 인모는 단 한편의 영화로 몸뚱이 빼고 모든 걸 말아먹었다. 스튜어디스 아내마저 다른 남자 품으로 떠났다. 몇 년 만에 찾은 집, 그곳에는 3년째 엄마에게 빌붙어 있는 큰형이 있다. 큰형 오한모는 120㎏의 거구다. 연필보다 벽돌을 먼저 잡은 싸움꾼으로 전과 5범이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보상금을 깔끔하게 날렸다. 형제는 만나자마자 닭죽 냄비를 던지며 싸울 정도로 살벌한 관계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여동생 미연이 나타난다. 예쁘고 조신한 줄 알았던 미연은 소문난 바람둥이로 두 번이나 이혼당했다. 미연은 중학생 딸 민경을 데려온다. 민경은 삼촌들에게 막말을 서슴지 않는 '싸가지'다. 집 떠난 지 20년 만에 23평 연립주택에 모여든 가족, 평균 나이 49세 '고령화 가족'이다.

담배를 피우는 조카 민경을 협박해 '삥'을 뜯는 인모,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조카의 팬티를 이용한 한모, 새로운 남자와 나타나는 미연. 고성과 욕설, 주먹이 오가는 집안은 오글오글 복닥복닥 조용할 날이 없다. 그 와중에도 엄마만은 한결같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식들을 품는다. "사람은 어려울수록 잘 먹어야 한다." 끼니때마다 진수성찬을 차린다. 마치 자식들이 세상에 나가 패배하고 돌아온 것이 모두 잘 거둬 먹이지 못한 자신의 탓인 양.

이 한심한 집안을 견디지 못한 사춘기 소녀 민경이 가출을 감행한다. 서로를 탓하던 중, 3남매는 각자 알고 있던 출생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첫째 한모는 아버지의 전처 자식이다. 둘째 인모는 아버지와 엄마 사이에 태어났다. 셋째 미연은 엄마가 바람나 가출한 뒤 낳아온 자식이다. 비록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거나 반만 섞였지만 3남매는 어쩔 수 없는 가족이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민경을 찾기 위해 나선다. 인모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대사라고는 '아~~'밖에 없는 3류 영화를 찍는다. 한모는 민경을 찾아주는 조건으로 감옥행을 무릅쓰고 폭력배와 거래를 한다. 폭력배의 도움으로 민경을 찾은 한모는 한 편의 반전극을 보여준다. 치밀한 계획으로 폭력배의 돈을 가로채고 사랑하는 여인까지 동행한 채 외국으로 도주한다. 폭력배의 보복은 인모에게 가해진다. 인모는 형을 지키기 위해 초죽음이 된다.

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세 명의 자식은 각자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엄마 또한 옛사랑과 재회한다. 행복한 결말이 조금은 어색하지만 따뜻한 가족영화를 본 듯 흐뭇하다.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후줄근하다. 처참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유쾌하다. 훈훈하다. 가족이란 "생각할 때마다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 힘이 쭉 빠지게 만드는, 평생 달고 사는 오래된 지병 같은 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 자신조차 나를 포기하여도 끝까지 나를 포기 하지 않는" 사람들 또한 가족이다. 가족이니까 짜증이 나고 가족이니까 애틋하다. 그래, 가족이니까.

291쪽, 1만원.

전은희(매일신문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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