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시작된 지 꽤 지났지만 제 아이 둘은 여전히 바쁩니다. 이곳에 온 지 2년 만에 처음 큰아이는 캠프를 가고 작은아이는 예비 유치원과 교회에서 진행하는 수련회에 참가했습니다. 캠프 등록 후 받아본 유인물에는 준비물과 주의사항, 그리고 부모님의 역할들이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언제 데려다 주고, 언제 데리고 가야 하며, 햇빛이 강하니 차단제를 바르고, 물놀이는 어떻게 진행할 것이며, 음식은 어떻게 준비를 하고, 또 캠프에서는 무엇을 제공하며, 비상연락은 어떻게 하며 등등 당연한 글들을 여기저기 굵은 글씨와 색깔로 강조를 해 놓았습니다. 여기에 와서 느낀 점은 사회 곳곳에 어린이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각종 문구와 교육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강조한다는 사실입니다.
캐나다에서는 아이들의 신상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모든 행위에 대해서 매우 엄하게 대처하고 있습니다. 특히 스쿨버스가 정차하여 비상등을 켜고 있는 상황에서 추월 혹은 차량 운행을 하다가 적발될 경우 400~2천달러의 벌금을 물립니다. 이후 5년 이내에 다시 위반하면 벌금 1천~4천달러 및 6개월간 감옥에도 갈 수 있습니다.
'나 홀로 집에'라는 미국 영화가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때 부모의 실수로 아이 혼자 남겨진 집에 강도가 들면서 빚어지는 소동을 그린 영화이지요. 이곳에서는 아이를 홀로 집에 둘 수 없습니다. 12세 이하의 자녀들은 항상 부모나 보호자의 통제하에 있어야 합니다. 12세 이하인 아이들은 혼자 외출을 할 수 없고 항상 부모가 차를 태워다 줘야 합니다. 보호자는 미리 등록해야 하며, 등록되어 있지 않으면 비록 옆집 친구 부모이고 같이 데려오라고 부탁받았다 하더라도 데려갈 수가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혼자서 학교에 가고, 또 친구 집에 놀러다니던 딸아이였지만 이곳에서는 혼자 집에 있을 수도 없고, 밖으로 혼자서 돌아다니지도 못합니다. 12세 이하의 어린이가 만 18세 이상의 어른들과 같이 있지 않으면 '아동방치죄'로 부모가 체포당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안전사고에 관한 법 규제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집 주변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인라인스케이트를 탈 경우에도 항상 헬멧과 보호 장비를 착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사소한 것 하나부터 안전사고 예방 차원에서 시행하고 있으며, 법을 지키지 않을 경우 주변 사람이 경찰에 신고하는 일까지 벌어지곤 합니다.
그래서 저희들도 한국에서는 지킬 수 없는 법이라 생각하고 가볍게 지나친 것들을 여기 와서는 철저히 지키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전거를 탈 때나 인라인 스케이트를 탈 때 반드시 헬멧과 보호 장비를 착용합니다. 한국에서는 카시트에 앉아 안전띠도 하지 않던 둘째 아이가 이곳에 와서는 카시트에 올라타면 제일 먼저 안전띠를 합니다. 저도 어린이보호구역에서의 서행과 네거리 일시정지는 기본입니다. 속도도 잘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공공장소에서는 아이들이 뛰지 않도록 주의를 줍니다.
여기서는 부모들이 자녀에게 법과 질서를 가르치고, 이것을 지키지 않을 때 엄격히 통제해 줌으로써 정의사회가 실현되지만, 한국에서는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무질서와 편법을 배우고 크는 것 같습니다. 작은 것에서조차 '남보다 빨리, 남보다 더 많이'를 강조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솔직하고 서로의 말을 믿기 때문에 불필요한 의심을 하거나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한 가정교육을 통해 자연히 법은 알아서 지키는 것으로 인식되는 잠재적 사고가 형성되는 듯합니다. 아무렇게나 생각했던, 당연하게 동조했던 사소한 일들이 한국사회의 불신과 혼란의 근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법을 가볍게 여기고 법 지키는 것이 바보처럼 여겨지면 아무도 법을 지키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법을 어겨서 이익을 취한 사람만 유리하고 약삭빠른 사람으로 인정받고 우쭐해하겠지요. 그렇지만 이런 행동들은 사회를 어둡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다음 주에 우리 가족은 동물원에 갈 계획입니다. 동물원 입장 요금이 5세 이상이면 10달러이고, 5세 미만은 무료인데 둘째 아이가 입장료를 면제받을 수 있는 나이에서 딱 한 달을 넘겼습니다. 오래전 한국에서 보았던 풍경을 떠올려 봅니다. 아이 나이를 속여 입장료를 면제받고 좋아하던 젊은 엄마의 모습을 말입니다. 저도 마음 같아서는 한 달을 깎아 이야기해서 입장료를 아끼고 싶습니다. 하지만 양심을 어기는 행동을 아이 앞에서 하는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khj09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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