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넘어 문단 등단 화제
홍종빈 시인이 두 번째 시집 '가시'를 펴냈다.
'벌초를 하다 문득, 양손을/ 관 밖으로 내보이며 간 알렉산더 대왕을 생각한다/ 베어도, 베어내도 다시 돋아나는 아까시나무가/ 무덤의 늑골 속에서 뻗어나와/ 알렉산더 대왕의 손처럼 내밀고 있다/ 무덤이 내미는 손, 아무것도 쥔 것 없이/ 가시만 움켜쥔 빈손이/ 낫을 쥔 나의 손과 맞서서/ 급소를 노리고 있다(하략) -가시- 중에서.
시인은 벌초를 하다가 성가시게 뻗치는 아까시나무 뿌리를 베어내며 이승과 저승의, 산자와 죽은 자의 모진 '살이'를 떠올렸던 것이다. 생활이 곧 시가 되는 것은 이뿐만 아니다.
'해거름 냇가에 매인 염소가/ 엄매, 엄매, 엄매/ 육십 년을 거슬러 울고 있네/ 새벽밥 먹고 왕복 팔십 리 성주장에/ 염소 사러 간 울 엄매/ 땅거미가 다 지도록 오시질 않았다네/ 저녁밥 먹은 별들은 하나 둘 밤 마실 나오는데/ 허기진 어린 남매/ 두 눈 쫑긋 세워 기다려도 오시질 않았네/ 내 다섯 살에 아버지 여의고/ 온 세상의 전부였던 울 엄매는/ 염소 소리 기어이 몰고서야 깜깜하게 왔었다네(하략) -장에 간 울 엄매-
염소를 키웠던 시인은 염소 소리를 들으며 어린 시절 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며 들었던 염소 울음소리를 기억해냈고, 기어코 그 염소 소리와 함께 어둠을 몰고 돌아온 어머니를 떠올렸던 것이다.
서지월 시인은 "홍종빈 시인은 어떤 시적 소재를 갖고도 한편의 시를 구성해내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이는 인생의 경험에서 비롯된 내공이며, 남달리 갈고닦은 노력의 결과"라고 말한다.
홍종빈 시인은 "한때 미친 듯이 마라톤에 열중했던 시절이 있었다. 쉬어갈 수도, 누가 대신 달려 줄 리도 없는 경기에서 나는 낙오하거나 포기하지 않기 위해 쉼 없이 달렸다. 달리는 내내 내가 마주쳤던 것은 고독이었지만 인생이라는 버겁고 절박한 길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 역시 고독이 아니겠느냐"며 "달리고 달린 끝에 나는 시(詩)라는 나래를 얻어 창공으로 날았다"고 말한다. 서지월 시인의 말이 아니더라도, 시인 홍종빈이 어떤 소재를 갖고도 멋들어진 시 한 수를 직조해낼 수 있는 것은 버겁고 외로운 인생길을 달려온 끝에 얻은 '날개' 덕분일 것이다.
예순이 넘어 문단에 등단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홍종빈 시인은 2010년 '대구 문학상' 심사에서 최종심까지 올라 주목을 받기도 했다. 168쪽, 7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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