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책] '책마을'에서 펼쳐지는 책사냥꾼들의 갈등

입력 2011-07-30 08:00:00

꿈꾸는 책들의 도시 1·2/발터 뫼르스 지음/두행숙 옮김/들녘 펴냄

무더운 여름이다. 만약 지금 내게 3일의 휴가가 온전하게 주어진다면? 나는 일년 동안 쌓아만 두었던 책들을 펴고 그 사이에서 먹고, 자고, 뒹굴고 싶다. 그러는 사이 내 영혼은 한 뼘쯤 자라있을지도 모른다.

이럴 때 떠오르는 책은 '꿈꾸는 책들의 도시'. 제목부터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지 않은가.

책의 첫 장에는 저자의 경고가 쓰여 있다. 바위가 많고 거친 땅을 밟으며 오래 걸어야 하니, 신발끈을 꽉 조여라. 그 경고를 명심하고 책을 따라가다 보면, 온갖 종류의 모험을 감행할 수 있다.

젊은 공룡 미텐메츠는 신비한 원고 뭉치를 유산으로 받고 실종된 저자를 찾아 부흐하임으로 떠난다. 부흐하임은 책 마을이라는 뜻으로, 그곳에는 공식적으로 등록된 고서점의 수만 해도 무려 오천 개가 넘었으며, 대충 짐작하기로 완전히 합법적이지는 않은 소규모 서점들의 수도 천여 개는 되었다. 책받침대만을 전문으로 만드는 석공들이 있는가 하면 독서대와 서가들로 가득 찬 가구점들이 있고, 독서용 안경과 돋보기를 만들어 파는 안경점들도 있다. 거리 모퉁이마다 찻집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보통 하루 24시간 벽난로에 불을 피워 놓고 시인들의 작품 낭독회가 열렸다.

이 세계에서는 책 사냥꾼들은 좋은 책을 찾기 위해 새로운 미로 영역들을 개척하고 정복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진귀한 책들이 점점 드물어지면서 책 사냥꾼들 사이의 경쟁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젊은 공룡은 이 도시를 여행하면서 부흐하임의 지하세계는 값나가는 책을 찾으려는 책사냥꾼들의 전쟁터이자 거대한 괴물들과 그림자 제왕이 사는 공포의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된다.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하는 작가들의 절규, 독자가 아니라 신문사들을 위해 글을 쓰는 비평가들, 돈이 되는 책만 만들어내는 출판사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거대한 자본의 힘을 재미있게 그려낸다. 젊은 공룡의 모험은 우리의 현실과도 닮아 있는 것이다. 독일 작가인 발터 뫼르스의 상상력은 독자들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2004년 출간된 이 책은 지금 내 책장에서 적당히 색이 바랜 채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언제든 책장을 열면, 마치 3D 영화처럼 나를 다른 세계로 단번에 끌고 갈 것이다. 그런 자신감이 팽배한 이 책은 음흉한 표정으로 책장에 고요히 놓여 있다. 인터넷 서점에선 책값도 절반이나 떨어졌다. 하지만 그 감동은 여전하다. 아, 얼마나 많은 좋은 책들이 빛도 보지 못하고 사라지는가.

더운 날, 책들의 도시에서 오래된 책들의 곰팡내를 참으며 지하세계로 들어가 그림자 제왕의 음침한 기운을 느껴보고 싶다. 문자 형태의 국수, 음절 샐러드를 먹으며 삼류소설 커피, 먹물 포도주, 착상의 물을 마셔보는 건 어떨까. 과자 '시인의 유혹'도 곁들여서 말이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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