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생활] 소리와 그늘과 시의 정원 소쇄원

입력 2011-07-26 07:07:55

합동 건축사 사무소 대표 최재현
합동 건축사 사무소 대표 최재현

여행의 중심은 그 지역의 대표적인 자연경관이나 특이한 환경을 보고 듣고 느끼는 여행을 하거나 그 역사와 오랜 전통이 담겨 있는 건축물을 답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 여름휴가에는 수많은 인파와 차량의 홍수에서 벗어나서 조용히 사색이 이루어질 수 있는 한 번쯤은 일상에서 벗어나 오감이 즐거워지는 여행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아름다운 자연과 건축이 어우러져 있는 빛과 그늘의 대조, 청각적인 소리 그리고 여행자의 문학적 정서를 함양할 수 있는 '소리와 그늘과 시의 정원 소쇄원'을 소개한다.

대나무로 유명한 전라도 담양지방에는 30여 개소의 정자건물이 산재하며 특히 16, 17세기에 조성된 정자와 정원은 호남 성리학계의 큰 인물(기대승, 정철, 김인후, 고경명 등)들이 직'간접적으로 경영한 수양처로 면앙정가, 사미인곡 등 한글가사문학의 발생무대가 된 곳이다. 대표적인 곳으로 면앙정, 송강정, 명옥헌, 식영정, 환벽당, 소쇄원 등이 있다.

이러한 정자는 단독으로 운영되기보다는 주변의 원림 혹은 자연경관에 맞추어 계획되었으며 정자마다 1칸의 온돌방을 두고 주변을 마루칸으로 감싸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경상도 지방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을 바라보기 위한 마루로 된 정자와는 형식이나 모양이 다른 것으로 정자 안에 오랫동안 머무르며 사방의 경관과 소리와 빛을 취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소쇄원을 소리의 정원이라 부르는 것은 물소리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과 생물의 소리가 어우러지는 오케스트라가 있기 때문이다.

입구의 무성한 대나무숲을 지날 때 불어오는 바람소리에 대나무잎의 화답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광풍각 마루칸에 앉으면 들려오는 계곡의 시냇물소리는 질풍노도와 같은 패기를 느낄 수 있고, 주위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벌레소리, 개구리 울음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소리를 만들어 낸다.

또한 소쇄원에 들어서면 밝음과 어두움, 빛과 그늘의 적절한 반복과 조합이 있다. 어두운 대나무숲을 지나면 갑자기 밝아지는 원림의 앞마당에 도달하고 계곡 건너편을 쳐다보면 그늘 속의 광풍각과 양지바른 제월당이 대조를 이룬다.

그러한 이유로 사림에서는 소쇄원이 정원건축 최고의 백미로 꼽히고 있다. 또 수많은 문인들이 시, 서, 그림으로 많은 표현을 해 놓았는데 그 중 문병란 시인은 "소쇄원은 건물로 조형된 일종의 시다"라고 말하고 있다.

소쇄원 여행 시 가장 중요한 것은 느긋하게 여유를 가지고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 속에 떨어지는 소리와 빛의 향연….

혹 정원을 관리하는 종손을 만나서 소쇄원의 역사와 원림에 대한 해설을 들을 수 있다면 문학적 정서도 한층 깊어질 것이다.

소쇄원을 보고 즐긴 후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면 주위에 산재한 송강정, 면앙정, 명옥헌 등을 둘러보는 여유로움도 좋을 것이다.

끝으로 소쇄원을 표현한 성리학자 김인후의 글을 소개해 본다.

대숲 너머 부는 바람은 귀를 맑게 하고

시냇가의 밝은 달은 마음을 비추네

깊은 숲은 상쾌한 기운을 전하고

엷은 그늘 흩날려라 치솟는 아지랑이 기운

술이 익어 살며시 취기가 돌고

시를 지어 흥얼노래 자주 나오네

한밤중에 들려오는 처량한 울음

피눈물 자아내는 소쩍새 아닌가

합동 건축사 사무소 대표 최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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