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대 일하는 사람들] 밤이면 별보는 멋, 낮에는 산바람 시원한 맛

입력 2011-07-21 15:33:19

현대인들은 바쁜 일상에 파묻혀 옆을 돌아볼 겨를조차 없다. 때로는 나와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을 반추해보자. 지하나 지상에서 벗어나 고지대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영천 보현산천문대(1,126m)와 KBS 팔공산 송신소(1,192m)를 찾아 이들의 삶 속에 녹아있는 기쁨과 슬픔을 더듬어봤다.

◆영천 보현산천문대

보현산천문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길은 한 폭의 수채화다. 이들을 찾아가는 길은 영천 화북면 자천리의 오리장림(五里長林)에서 시작된다. 길이가 오리(2㎞)라 해서 붙여진 오리장림은 천연기념물 제404호의 방풍림이다. 차창가로 비치는 왕버드나무'팽나무'회화나무'느티나무 등 노거수들이 방문객을 손짓한다.

오리장림이 끝나자마자 영천 화북면 소재지의 아담한 시골마을이다. 이곳을 지나자 화북면 횡계리 계곡이 방문객을 맞는다. 짙은 녹음을 뽐내는 숲 사이 계곡에는 청량한 물소리가 이어진다. 2㎞ 길이의 시냇물과 계곡을 따라 소위 횡계구곡(橫溪九曲)인 쌍계, 공암, 태고와, 옥간정, 와룡암, 벽만, 신제, 채약동, 고암 등 9개의 절경이 수백m 간격으로 이어진다.

계곡의 물소리를 뒤로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보현산 정상의 천문대가 빤히 올려다 보이는 정각리 별빛마을이 눈 안에 들어온다. 별빛마을에서 보현산 천문대까지 9.3㎞의 '천수누림길'을 자동차로 올랐다.

보현산천문대에 자동차로 오르는 이 길은 구절양장(九折羊腸) 그 자체다. 경사가 워낙 가팔라 모퉁이를 돌 때마다 하늘로 빨려드는 느낌이다. 길섶에는 산철쭉을 비롯해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천상의 화원을 연출한다. 올라갈수록 기후는 돌변한다. 온자하던 산봉우리 사이로 운무(雲霧)가 휘날리며 비경을 연출한다. 천문대 입구에 다다르기 직전엔 한 치 앞도 분간 못 할 정도의 뿌연 구름안개가 휘날린다. 보현산천문대에 도착하자 성현일(48) 천문대장이 반갑게 손짓한다.

1996년 설립된 보현산천문대는 연구동'숙소동'행정지원시설 등과 국내최대 구경(1.8m)의 망원경동, 태양을 관측하는 태양플레어망원경동이 있다. 성 대장은 먼저 연구원, 엔지니어, 관측요원, 행정'시설 요원 등 15명이 가족처럼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 직원 중 절반 정도는 인근 지역에서 출'퇴근을 하며 나머지는 상주하고 있다. 대학교수와 연구원은 5개월 단위로 관측 제안서를 제출한 뒤 천체 연구에 몰두한다. 이곳 연구원들은 돈벌이를 떠나 자신의 정열과 시간을 투자해 하늘의 별을 연구하는 순수과학 분야에 자신을 던진다.

천문대 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을 만나기 전 막연히 별을 보며 살아가는 낭만적인 생활을 생각했다. 하지만 고지대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이냐고 묻자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날씨라고 말한다.

오형일(30'관측전담요원) 씨는 "이곳은 평지보다 겨울이 길고 이르면 10월 말쯤 첫눈이 내린다"며 "1,200m의 고지이기 때문에 평지보다 기온이 평균 7, 8℃ 낮기 때문에 겨울 내내 눈이 쌓여 제설 작업으로 골머리를 앓기 일쑤다"고 말했다. 특히 겨울철 눈이 많이 올 때는 천문대를 오르내리는 도로가 빙판길이 되어 사고 위험이 크다. 폭설이 오면 자동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올라가거나 삽을 들고 눈을 치우는 고생도 감수해야 한다.

여름철에는 겨울철보다 한결 낫다. 산 정상의 온도가 도심보다 낮아 시원하다. 다만 여름에는 습도가 높아 세탁물을 건조하는 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윤동근(30'관측요원) 씨는 "여름에는 산 정상에 있다 보니 따로 피서를 떠날 필요가 없다. 휴가 때에도 이곳에 남아 여가활동을 하며 지낸다"고 말했다.

식사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까 궁금했다. 식사는 천문대 내 식당에서 점심과 저녁을 해결한다. 다만 아침을 거르는 것이 이들에게 어려운 점이다. 빵이나 우유 등 부식으로 간단히 해결하는 직원도 있다. 그러다 보니 야식을 즐기는 직원들이 많다. 이정숙(30'여'행정담당) 씨는 "산에서 생활하다 보니 밤이 되면 식욕이 더욱 당긴다"며 "동료와 함께 라면'스파게티 등 야식을 즐겨 먹다 보니 체중이 불어나는 게 부담스럽다"며 너스레를 늘어놨다.

가정을 가진 직원들은 늘 가족에 미안하다. 집을 떠나 산 정상에서 생활하다 보니 일일이 자녀를 챙겨주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노라니 산 정상에서 별을 보며 생활한다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산 정상에서의 생활은 어려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상민(33'관측담당요원) 씨는 "밤새 관측을 마친 후 새벽녘에 나와 보면 운해가 멋있게 끼어 있고 산봉우리가 마치 섬처럼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족적인 분위기도 이들에게는 큰 기쁨이다. 대구'영천'광주'공주'대전 등 각기 다른 지역 출신의 직원들이 산 정상에서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가고 있다. 각기 맡은 바 업무를 하면서 다른 분야 일도 자기 일처럼 도와준다. 음주가무도 이곳에는 없다. 단지 여가 시간에 탁구 등 간단한 운동을 하며 스트레스를 푼다.

보현산 정상에서 만난 성현일 천문대장의 어깨에는 하늘의 셀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이 내려앉은 듯하다.

◆KBS 팔공산 송신소

팔공산 비로봉(1,192m) 옆 KBS송신소 가는 길은 녹록지 않다. 마침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더니 비로봉 정상에는 운무가 휘날린다. 또한 이곳에 가려면 인근 군부대의 통행 허가도 3일 전에 받아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송신소 입구에 도착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정창교(56'KBS대구방송총국 기술국장) 씨가 애완견 '팔공이'를 안고 방문객을 맞이한다.

1971년 비로봉 정상에 개소한 KBS 팔공산 송신소에는 정 국장을 비롯해 유행우'정한태 경비요원과 김옥희 주방 아주머니 등 4명이 2박3일 주기로 365일 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15년째 이곳을 지키고 있는 정 국장이 먼저 운을 뗐다. 정 국장이 처음 이곳에 근무할 당시에는 지상과의 기압차로 1주일 정도 있다가 평지로 내려가면 입술이 터지고 귀가 멍멍해지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고지대 근무 후 집으로 내려간 날은 몸이 피곤해 하루종일 휴식만 취했다고 회상했다.

이곳은 사계절 관계없이 애로점이 많다. 가을은 빨리 오지만 봄은 짧고 늦게 온다.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 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지만 업무에 몰두하다 보면 단풍을 즐길 생각은 엄두도 못낸다고.

특히 겨울에는 온갖 어려움이 닥쳐온다. 이곳이 경기도 화악산(1,436m) 다음으로 높은 지대이기 때문에 영하 30~40℃까지 내려갈 정도로 춥다. 추운 겨울 옷을 제대로 차려입지 않고 바깥으로 나갔다가 체온이 급격히 떨어져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경우도 있다고 한다. 폭설이 내릴 경우 제설 인력이 없어 자동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올라오기 일쑤다. 특히 겨울철에는 용수문제로 고생했었다. 1990년 산 정상에 관정을 뚫기 전에는 물이 얼어 세수조차 할 수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겨울이면 송신탑 안테나에 얼어붙은 덩어리가 봄이 되어 녹아내리면 자칫 목숨조차 위험할 때도 많다. 오늘처럼 비바람이 몰아치는 여름에는 비가 하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산 아래에서 위로 휘날린다고 한다.

인접해 있는 TBC송신소 천대성(TBC 디지털관리부) 차장이 멀리서 손님이 왔다고 찾아왔다. 고지대에서의 생활이 어떠냐고 묻자 숙식은 물론 혼자 생활하는 것이 힘들다고 털어놨다. 특히 여름철 기상악화로 번개가 칠 때에는 기계실에 전기가 날아다닌다며 공포감까지 든다고. 몇 년전 겨울엔 근무지로 올라오다 눈이 내려 자동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올라오기 일쑤였다고 고생담도 털어놨다. 태풍으로 산사태라도 나면 길이 끊기기 일쑤여서 근무자와 교대를 해주고 싶어도 못해 길이 복구될 때까지 송신소에 갇혀 있는 경우도 있다. 또한 기상이 좋지 않을 때는 통신 장비가 고장이 날까 걱정되며 집에서 쉬는 날에도 늘 마음은 송신소에 가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구경북 지역에 방송을 전하는 중요한 임무 때문에 늘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비로봉 정상에서 100여m를 내려왔을까. 한 무리의 운무가 팔공산 서봉의 깎아지른 절벽을 타고 하늘로 승천하고 있다.

전수영기자 poi2@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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