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대덕 연구단지에 근무하는 유명한 연구팀장의 강의를 들었다. 연구팀장은 과학 책읽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독서토론은 물론 절대로 토론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자신의 경험으로는 연구원들과 토론을 하다 보면 결국 끝에 가서는 서로 감정이 상하게 되어 모임 자체가 깨어진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토론교육을 받지 않으면 어른이 되어서 하는 어떤 토론이든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논리적 반박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서로 감정이 상하게 되고 그 상한 감정이 결국 앙금이 되어 인간관계도 깨어지게 된다. 이러한 토론은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좋다.
미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디베이트는 찬반 두 팀으로 나누어서 일정한 규칙에 따라 입론, 교차질의'반박, 최종 발언 등을 하고 얻은 점수로 승패를 결정하는 언어 게임이다. 일종의 언어로 하는 스포츠 게임이다. 그런데 스포츠 게임을 하고 게임에 졌다고 감정이 상해 인간관계가 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게임에 졌을 때는 깨끗이 승복하고, 승자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또 이긴 자는 진 자에게 격려와 위로를 보낸다.
사실 디베이트의 본질은 승패를 가리는 것이 아니다. 찬반으로 나누어 서로 논리를 겨루는 사고 훈련 과정이다. 그래서 자료 조사도 찬성과 반대의 모든 자료를 다 조사한다. 디베이트 경기를 할 때 반드시 토너먼트가 아닌 리그전을 한다. 토론을 할 때도 한번은 찬성의 입장에서, 다음은 반대의 입장에서 토론을 한다. 마치 테니스를 칠 때 코트를 바꾸어서 치는 것과 같이. 이렇게 3, 4회 찬반을 바꾸어 토론을 함으로써 그 주제에 대해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훈련이 된다. 나아가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주장을 옹호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즉 디베이트는 사고 훈련이자 철학 게임인 것이다.
디베이트는 시상도 다르게 한다. 우승팀만 시상하는 것이 아니다. 참가팀 모두에게 노력상을 준다. 그리고 베스트 리서치상, 스피커상, 리스닝상, 매너상 등 영역별로 시상을 한다. 그뿐만 아니라 토론을 하기 전에 규칙을 알려주고 다음과 같은 헌장도 낭독한다.
"우리는 디베이트 활동을 통해 세상과 사물을 좀 더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며 이를 통해 깊이 있는 인식과 비판적 안목을 길러, 나 자신의 학문적 소양을 기르고 나아가 상호 존중과 합의 협력의 정신을 배워 성숙한 민주시민으로서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부산 남고등학교는 1학년 사회를 교과서를 배우지 않고 필수학습 요소를 중심으로 1년간 시사토론을 한다고 한다. 즉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수업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더디기는 하지만 핵심 역량이 길러진다. 핵심 역량이 길러지면 투입이 달라지더라도 산출은 한결같다. 그래서 문제가 좀 유형을 달리해서 출제되더라도 잘 적응하게 된다. 지난해 수능에서 문제를 좀 꼬아놓으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고 학생들이 낭패를 보았다고 한다. 과정보다는 결과만 중시하는 공부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토론을 거쳐 문제 풀이를 하였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교육은 더디지만 멀리 보고 크게 키워야 한다. 점수가 급하다고, 인간관계가 깨어진다고 토론을 절대 하지 말라고 해서는 안 된다. 토론으로 인간관계가 깨어지지 않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토론교육을 해야 한다. 대구에서도 디베이트로 교과서를 배우는 학교가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한원경(대구시교육청 교육과정운영과 장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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