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입속 염증, 단순 피로 탓 넘겼다간 신경계 손상 등 치명적
과로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생기는 증상이 있다. 바로 입안이 헐게 되는 증상이다. 대부분 휴식을 취하면 낫는 경우가 많지만 계속 재발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대부분 단순 입병쯤으로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무심코 넘긴 증상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명 실크로드병
회사원 김중곤(가명'35) 씨는 일년에 4, 5차례 입안이 헐고 때때로 피부에 반점이 올라왔지만 그냥 지내왔다. 가끔씩 고환 부위에도 궤양이 생겼다가 없어지곤 했지만 별로 아프지도 않고 저절로 나아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느 날부터 물체가 약간 흐릿하게 보였지만 최근 피로한 일이 많아 일시적인 것이라 생각하고 병원을 따로 찾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눈에 통증과 발적(염증의 국소 증상으로 충혈이 오는 것)이 생겨 안과를 찾게 됐다. 별 일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김 씨에게 안과에서는 지금껏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베체트병'이 의심되니 류마티스내과를 가보라고 했다.
베체트병은 전신의 혈관에 염증을 나타내는 질환 중 하나. 증상으로는 만성적인 궤양이 구강과 성기에 자주 재발되고 눈과 피부 등에 다양한 증상을 나타내는 질병이다. 터키의 피부과 의사인 훌루시 베체트(Hulusi Behcet)가 1937년에 구강과 성기에 반복적인 궤양이 생기고 눈에 염증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환자 2명을 보고하면서 유래됐다.
베체트병은 지중해 연안, 중동지방, 우리나라를 포함하는 극동지방에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체트병은 일명 '실크로드병'(silk road disease)으로도 불린다. 지리적으로 북위 30도와 45도 사이의 극동 아시아와 서남 아시아 지역, 즉 옛날 실크로드의 인접지역에서 잘 발병하고 증상도 심각하기 때문. 베체트병 환우회 소식지 이름도 '실크로드지'다.
특정 지역에서 많이 발병하는 점으로 미뤄 밝혀지지 않은 병원체나 물질이 유전적 소인이 있는 사람에게서 임파구와 백혈구의 기능 이상을 초래해 병이 생기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HLA-B51이라는 특수한 유전자가 환자들 중에서 50~60% 발견돼 이 유전자가 베체트병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하지만 발병 원인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주로 20, 30대에 발병하는 베체트병은 원인이 분명치 않다 보니 진단법도 확실하지 않다. 게다가 증상조차 꽤나 복합적이고 까다롭기 때문에 진단자체가 어렵다. 환자가 자각하기까지 시간이 걸려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곳에 생기는 증상
대개 일상생활에 극히 어려울 정도로 장애를 유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증상을 방치하면 심각한 상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안구에 베체트병이 침범하는 포도막염의 경우,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약 20% 정도는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 또 소화기계, 중추신경계, 심혈관계 등 전심에 침범하는 경우에는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대부분 환자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증상은 '구강궤양'이다. 혀 주위 입안 점막이나 입안 깊은 곳인 후두 주위 등 입안 어느 곳이나 발생한다. 한 개나 여러 개가 생길 수 있으며 궤양 바닥은 하얗거나 약간 누런 막이 형성된다. 혀, 잇몸 및 입술 등 어느 부위에나 생기고, 통증이 심한 편이며 대부분 흉터를 남기지 않고 치유된다. 보통 일년에 3차례 이상 생긴다.
'성기 궤양'은 환자의 70% 정도에서 발생하고, 주로 구강궤양이 발생한 후에 생긴다. 구강궤양보다 크고 깊으며 대부분 통증은 없지만 오래 지속되고 종종 흉터를 남긴다. 여자는 외음부에, 남자는 음낭에 가장 흔히 발생한다.
'피부 증상'은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여자는 결절성 홍반, 남자는 가성모낭염(모발에 대한 일종의 이물반응, 위치상 모낭염일뿐 일차적인 감염증은 아님)과 고름이 있는 발진 증상 또는 여드름 모양의 결절이 흔히 나타난다.
'눈의 증상'은 실명 위험이 있기 때문에 매우 주의해야 한다. 통증, 눈부심, 눈물, 발적 및 시력장애가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특히 눈의 포도막 뒤쪽에 염증이 발생하면 후방포도막염이라 부르는데 이때에는 시력장애가 발생하며 합병증으로 시신경 위축으로 인한 시력상실이 생길 수 있다. 우리나라 베체트병 환자의 경우 20~30%에서 안구 증상이 나타난다.
이 밖에 무릎이나 발목 관절이 반복적으로 붓거나 아픈 경우도 있다. 특징은 관절이 지속적으로 아프지 않고 일시적 혹은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는 점. 또 신경에 침범하면 무균성 뇌수막염이나 뇌 동맥류 또는 혈전증에 의한 뇌졸중을 일으킬 수도 있다. 대장이나 위에 궤양이 생겨 복통이나 설사를 하거나 장 천공 및 복막염이 되는 경우도 있다.
◆더 이상 손상없도록 치료하는 것이 목표
정확한 진단을 위해 핼액검사(유전자(HLA-B51))나 피부 생검 등을 하지만 어떤 검사로도 확실히 베체트병을 확진하거나 배제할 수는 없다. 베체트병은 그 진단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는 증상이나 검사 결과는 없기 때문에, 여러 증상 중 진단적 가치가 높은 것들로 이루어진 분류 기준을 이용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음부 궤양이 가장 진단적 가치가 높아 2점을 부여하고, 반복성 구강 궤양, 피부 증상, 안구 증상 등에 1점씩을 부여하는데 전체 3점 이상이면 베체트병으로 진단한다.
아직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탓에 증상을 조절해 삶의 질을 높이고, 눈이나 중추신경계, 혈관 등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치료의 목표다. 약물을 복합적으로 사용해서 치료하는 경우가 흔하다.
치료에 가장 중요한 점은 베체트병이 자주 재발하는 병임을 인식하고 꾸준한 치료와 정기적인 검사를 통해 질병의 활성도를 평가하고 치료 부작용을 잘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 장기간 꾸준히 치료를 하는 것이 중요하며, 증세가 호전되면 약의 용량을 서서히 감소시켜 완전히 약을 끊을 수도 있다. 전신증상이 동반된 남성 환자는 증상이 심하게 나타날 수 있으므로 초기부터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가족력이 있는 경우 등 의심이 된다면 전문의와 상담해서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자료제공=대구가톨릭대병원 류마티스 및 퇴행성관절염 전문질환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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