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경의 날' 여경 3인방 방경화 경위'김해영 경위'하보영 경장
거친 남자의 세계라고 여겨지는 경찰 조직에도 '여풍'(女風)이 거세다. 나흘에 한 번꼴로 찾아오는 야간 당직,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강력사건의 범인을 쫓아 전국을 누벼야 하는 몸이 고된 직업이 경찰이다. 1일 65번째 '여경의 날'을 맞아 대구를 대표하는 여경 3인방을 만났다.
◆거친 조직에 여풍 분다
하보영(31) 경장은 성서경찰서 형사과의 유일한 여형사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변사 전문 형사'라고 부른다. "주변 동료들이 저보고 자살을 몰고 다니는 스타일이래요. 제가 당직을 서는 날마다 자살 사건이 하루에 세 건씩 터지곤 했거든요."
그는 형사생활 2년6개월 만에 수많은 죽음을 마주했다. 아파트에서 투신한 자살 현장, 오랫동안 부패가 진행돼 악취가 나는 시신을 확인하기도 했다.
하 경장은 "가족을 잃고 유족 조사를 받는 이들을 대할 땐 슬픔을 이해하려 애쓰고,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는 피의자를 만나면 더 꼼꼼하게 범죄 사실을 파고든다"고 했다. 살인과 강간, 자살 등 험한 일을 다루는 형사과에 여성의 섬세함이 필요한 이유다.
성폭행과 청소년 범죄를 다룰 때도 마찬가지. 대구서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계 방경화(36) 경위는 강간과 강도 같은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10대들을 자주 만난다. 방 경위는 어린 나이에 범죄자가 된 아이들 대부분이 가정이 온전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경찰서에 온 애들 중에 양쪽 부모님이 자녀를 잘 보살피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가정에서 받은 상처가 많은 아이들이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거죠." 그는 피의자가 된 아이들이 성인이 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따뜻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7년형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 중인 10대가 방 경위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온데서 보듯 그의 노력은 빛을 보고 있다.
◆그래도 여전한 차별
12년차 베테랑 경찰인 방 경위를 차별한 것은 동료 경찰들이 아니라 피의자들이었다. 그가 형사과에 있을 때 만난 한 남성 피의자는 경찰서에 오자마자 "여자한테 조사를 안 받겠다"며 화를 낸 적도 있었다. 또 다른 피의자는 "아가씨, 커피 한 잔 가져와 봐"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방 경위는 "그런 피의자들을 만나면 우리도 똑같은 경찰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더 철저하게 조사를 진행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여성으로서 가장 힘든 일은 야간 근무다. 4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밤샘 근무를 견디다 보니 피부가 푸석해지고 체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그래도 '여자니까 안돼'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이들은 남자들과 똑같이 해내려 한다. 대구 고산지구대 김해영(29) 경위는 당직을 서는 밤마다 취객을 상대한다. 지구대에 찾아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술에 취했거나 서로 싸움이 붙어 감정이 격해 있는 상태다. 김 경위는 "여자들은 경무계나 민원실 등 내근 부서로 많이 가는데 최전방에서 밤늦게 현장을 지키는 일을 해봐야 현장 경험이 쌓인다"고 했다.
야간 근무가 잦은 업무 특성 때문인지 여경들은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은 편이다. 감정평가사와 결혼한 하 경장을 빼고 나머지 2명은 남편이 경찰이다.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2008년 기준으로 결혼한 여경 중 57.3%가 부부 경찰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 경위는 "밤 근무가 잦고 생활도 불규칙하고, 우리 생활을 뼛속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경찰밖에 없는 것 같더라"며 활짝 웃었다.
현재 대구에서 활동하는 여경 비율은 꾸준히 느는 추세다. 2008년 281명이었던 여경은 2011년 344명으로 22.4% 증가했다. 이들은 모두 '여경'이라는 단어가 사라지는 날을 꿈꾼다. 이 단어 자체가 여성 경찰관을 남성과 구분 짓는 차별이기 때문. "형사과처럼 험한 사건을 다루는 부서는 여자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아요. 밤 근무부터 현장 출동까지 '여자니까 배려해 달라'고 요구하기보다 남자 몫을 거뜬히 해낸다면 '여경'이란 단어도 언젠가 사라지지 않을까요."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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