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사람이 우선이고 목적이다

입력 2011-06-22 07:19:47

도대체 얼마나 더해야 하나. 한계를 느끼며 고통에 지배당해 괴롭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말이다. 이 상황이 도저히 헤쳐나갈 수 없는 늪처럼 느껴지지만 희망을 놓을 수 없는 비슷한 경험이 있고 미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장점도 있기에, 혹은 그냥 끌려가며 살아가기에 버틸 수 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두 끼를 굶으면 배가 고플 것이다. 허기가 져 힘이 없고 손이 조금씩 떨려오며 짜증이 서서히 엄습했던 기억은 누구나 한번쯤 있을 것이다. 그러면 시장이 반찬으로 변해 마구 먹게 된다. 그렇게 꿀맛 같던 음식들이 차 한잔 마실 시간도 지나지 않아 한 숟가락씩 삼킬 때마다 그 기쁨을 잊어간다. 포만감을 크게 느끼면 숟가락을 놓게 되지 않나. 최소 8시간을 참아온 허기 달래기는 허겁지겁 10분 만에 끝나버린다. 수직에 가깝게 상승하던 만족감은 그 10분 만에 수평에 가깝게 누워버린다. 건강을 위해 혹은 아름다움을 위해 살을 빼려는 분들은 정반대의 경험을 한다. 처음엔 잘 빠져 기분 좋았던 살들이 똑같은 운동량에도 줄어드는 것은 확연히 실망스럽다. 땀 흘리며 운동할 때 마지막 5분이 그렇게 힘들 수가 없다. 그럼에도 수직으로 떨어지던 체중감소 곡선은 어느새 수평 아니 가끔은 상승하는 것이 아닌가.

무대에서 나타나는 예술 행위들도 관객들에게 주는 감동이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 빠져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하는 요즘이다. 조금 더 자극적인 내용을 말해야 하고 조금 더 강한 표현을 해야 '먹힐 것이야'라며 자신을 가둬 버리는 건 아닐까. 그러나 어느 선배의 이야기처럼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인데 사람에게 더 투자해야 하는 것이 정답이 아닐까.

예산이건 정성이건 간에 말이다. 극단적 표현이지만 배우가 "여기는 1941년 경성!"이라 말하면 순간적으로 무대는 그리로 변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관객은 연극이라는 약속의 기호를 객석에 앉을 때부터 이해하고 있으니 말이다. 무대 위의 행위에 대해선 사람이 우선이고 목적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더욱 먼저 주위의 사람들에게 잘하자.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사람의 관계에는 좋은 사람은 계속 좋은 것이다. 한계가 없는 것이다. 무한한 사랑과 신뢰가 있을 수 있다. 일에서건 아니건 중요한 건 사람이다.

이완기(대구시립극단 제작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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