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구하는 기적 '심폐소생술' 배우기도 쉬워
우리나라에서 돌연사하는 환자 100명 중 90명가량은 누군가 목격자가 있다는 보고가 있다. 하지만 이들 중 즉시 심폐소생술을 제공받는 경우는 100명 중 1.5명꼴밖에 안 된다. 일부 선진국의 경우, 심폐소생술 시행률이 40~50%에 이른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심정지 환자는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행여 내가 잘못해서 죽으면 어떻게 하지'라고 겁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가만두면 죽을 사람을, 어떻게 보면 이미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기적을 바로 당신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과연 도울 수 있을까
이런 상황을 떠올려보자. 어느 화창한 오후 강변 산책로를 가볍게 달리던 40대 나만희 씨. 바람을 가르며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던 그는 갑작스런 상황에 깜짝 놀랐다. 앞서 뛰어가던 한 남자가 갑자기 멈칫하더니 그대로 쓰러진 것. 그 남자는 고통스러운 듯 일그러진 얼굴로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온갖 생각이 나 씨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떻게 하지? 휴대폰도 두고 왔는데. 도와줘야 하나? 하지만 괜히 건드렸다가 곤란한 일에 휘말리는 건 아닐까?' 쓰러진 사람은 이내 경련을 일으키더니 이내 움직임이 멎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뒤따라 뛰어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래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할 일은 없을 거야. 뒤에 사람들은 휴대폰도 있을 테고, 알아서 119를 부를 거야. 괜찮을 거야.'
이튿날 그는 신문에 실린 기사에 눈이 번쩍 뜨였다. '50대 남성, 어제 오후 강변에서 운동 중 돌연사. 주위 사람들 119 불렀지만 이내 숨져. 제때 심폐소생술만 했더라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나 씨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심폐소생술도 못하는 내가 괜히 나서봐야 결국 죽었을 거야. 자칫 잘못해서 내가 덤터기를 쓰면 어떡해? 119를 부른 사람들은 아무 책임이 없을까?'
◆'심정지 환자는 이미 죽은 사람'
누군가 심장마비로 죽어가고 있는데 외면한다면 목격자를 처벌할 수 있을까? 반대로 죽어가는 누군가를 도우려다가 최악의 결과가 생겼고, 이후 책임을 묻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이유로 2008년 12월부터 시행된 법률이 흔히 말하는 '선한 사마리아인 법'이다. 성경에 나오는 일화에서 이름을 따왔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심하게 다친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이 다친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가게 되지만 유대인들에게 멸시당하며 사는 사마리아인은 구해준다. 예수는 이를 빗대어 어려울 때 진정 도와줄 수 있는 이웃은 누구인지 묻는다. 이런 이웃을 도와줘도 문제가 없을까?
'선한 사마리아인 법'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5조의 2항, 즉 '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을 말한다.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응급의료나 응급처치를 제공해서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死傷)에 대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행위자는 민사 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 책임을 지지 아니하고 사망에 대한 형사 책임은 감면한다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쓰러져 도움을 청하는 상황에서 비록 응급처치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도와줘야 하고, 그로 인해 생긴 피해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말. 더욱이 돌연사 위험에 처한 심정지 환자는 무조건 도와야 한다.
◆119 올때까지 가슴압박 계속
제대로 된 심폐소생술을 배워두는 것은 필수. 하지만 기본적인 내용을 알고 있다면 응급처치는 가능하다. 우선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진 환자를 발견하면 먼저 양쪽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큰 목소리로 "여보세요? 괜찮으세요? 제 말이 들리나요?"라고 소리치며 동시에 숨을 쉬는지 확인을 한다. 이때 환자가 반응이 없고, 정상적인 호흡을 하고 있지 않다면 즉시 큰 소리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 119에 신고한다. 만약 주위에 심장충격기(자동제세동기)가 있다면 함께 가져오도록 요청한다.
이제는 가슴압박을 30회 시행할 단계. 환자의 가슴 중앙에 깍지 낀 두 손의 손바닥 뒷부분을 대고 양팔을 쭉 편 상태에서 체중을 실어 환자의 몸과 수직이 되도록 가슴을 누른다. 가슴 압박은 성인의 경우, 분당 100~120회 속도와 5~6㎝의 깊이로 눌릴 정도면 된다. 가슴이 쑥 들어갈 정도로 강하고, 빠르게 눌러야 한다. 흉부압박 30회가 끝나면 인공호흡을 2회 시행한다.
하지만 심정지 환자의 경우 인공호흡도 필요없다. 뇌로 피를 공급하는 것이 최우선이기 때문. 체중을 실어서 힘차고 빠르게 눌러야 한다. 손바닥 뒷부분이 닿는 부위는 젖꼭지 사이 중간의 복장뼈 부위. 명치에서 약간 윗부분에 해당한다. 이를 119 구급대원이 도착할 때까지 반복해서 '쉼 없이' 시행해야 한다. 피 공급만 계속된다면 생명 구조뿐 아니라 후유증도 막을 수 있다.
◆자동제세동기를 활용하자
심정지 환자가 발생했을 때 외부에서 강한 전기충격을 가해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드는 장비가 심장충격기다. 심장박동이 멈춘 후 1분 안에 전기충격을 주면 생존율이 90%까지 높아진다. 반대로 1분씩 늦어질 때마다 치료 성공 확률이 7~10%씩 떨어진다. 결국 심장마비 직후 4~6분 안에 자동제세동기 사용 여부가 환자의 생사를 가르는 데 중요하다.
2008년 11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공공다중이용시설에 이 기계를 의무 설치하도록 규정했다. 이후 공항, 보건소, KTX 역사 등에 심장충격기가 보급돼 있다. 하지만 아직 선진국 보급 수준에 비해선 턱없이 낮다. 일본의 경우 2015년까지 인구 250명당 심장충격기를 1대꼴로 보급할 계획을 세우고 현재 배치 사업을 진행 중에 있다.
현재 KTX 동대구역사에 11대를 포함해 대구에 90여 대가 보급돼 있지만 119 구급차를 제외하고는 이용실적이 없다. 대부분 사용법조차 모르기 때문.
한편 심폐소생술을 알더라도 실제로 하기는 두렵다. 이 때문에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대한심폐소생협회(www.kacpr.org)에서 '교육일정'을 클릭한 뒤 '지역'과 '일반인'을 택하면 교육일정을 알아볼 수 있다. 대구응급의료정보센터도 일반인 대상 교육을 한다. '1339'로 전화하거나 홈페이지(www.1339dg.or.kr) 중간 부분 '응급처치교육'에서 신청이 가능하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자료제공=경북대병원 응급의학과 류현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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