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가슬갑사 머물던 원광법사, 세속오계 화랑정신 만들어 전하다
"오늘의 학사 대부들이 진한(秦漢) 역대의 역사에 있어서는 널리 알고 자세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우리나라 일에 있어서는 그 시말을 모르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한서(漢書)와 당서(唐書)에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에 대한 열전이 있으나 자기 나라 것만 자세히 쓰고 다른 나라 것은 간략하고 제대로 싣지 않았다. 임금의 선악과 신하의 충사(忠邪), 나라의 안위, 인민의 이란(理亂)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뒷사람들을 권면하고 징계할 수 없으니… 한나라의 역사를 완성하여 이를 만세에 남겨주어 해와 별처럼 밝히고 싶다(炳若日星)."
고려 제17대 임금 인종(仁宗)은 조선조 사관(史官)에 의해 "매사에 우유부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인종의 명으로 삼국사기는 세상에 태어났고, 그 열전(列傳)을 통해 천 년 전 화랑(花郞)은 살아났다. 인종이 '해와 별'처럼 밝히고 싶었던 '역사'로 인해 우리는 신라의 '해와 별' 같은 화랑을 만날 수 있는지도 모른다.
◆화랑의 발상지, 청도 가슬갑사(嘉瑟岬寺)
'이곳 삼계리(신원리) 일대는 신라시대의 가슬갑사지이다. 가슬갑사는 원광법사(圓光法師)가 주석하면서 화랑도의 세속오계를 탄생시키고 화랑도가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근원지이다.'
청도군 운문면 삼계리 입구 길가엔 '삼국통일의 초석, 화랑정신의 발상지 청도'란 초라한 안내 간판이, 도로 가 숲 속에는 '화랑정신의 발상지 기념상'이란 조형물이 2009년 세워졌다. 돋보이지 않는 간판이나 조형물과 달리 청도는 화랑으로 유서가 깊다.
우선 원광법사 때문이다. 11년간 진(陳)과 수(隋)나라에 유학한 뒤 600년 귀국한 그는 왕경(王京) 경주 외곽, 신원리 가슬갑사에 머물며 신라 청년 귀산(貴山)과 추항에게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전했다. 임전무퇴(臨戰無退), 살생유택(殺生有擇) 등 오계는 602년 아막성(阿莫城'지금의 남원)에서 벌어진 백제와의 전투에서 귀산과 추항이 실천, 전사하면서 신라 젊은이 특히 화랑들의 정신이 됐다.
불가의 불살생계(不殺生戒)와는 어긋나는 세속오계는 1천400년 전 청도 가슬갑사에서 이렇게 시작됐다. 동국대 사학과 이기동 교수는 "원광은 승려를 위한 보살계와 세속인을 위한 도덕률을 구별했다"며 "모든 사람들이 승려인 자기들과 같은 계율을 지킬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이는 원광의 현명함과 동시에 아량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의 사회 내지 인생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폭넓은 것이었나를 짐작하기에 충분하다"고 해석했다. 세속오계는 신라가 팽창하던 560년대에서 삼국통일 시기인 660년대까지 100년에 걸쳐 벌어진 끝없는 전쟁의 국난 시련기에 화랑과 신라 청년, 신라인들의 행동 기준으로 제시됐다.
또 청도는 경주 외곽 수비 군부대인 6개 정(停) 중 서부담당인 두량미지정(豆良彌知停)이 주둔했던 곳(각남면 추정)이고, 밀양'창녕'고령(대가야) 등 서부 진출을 위한 군사 요충지였다. 큰 제사인 대사(大祀)가 열린 3산(三山)의 하나인 혈례(穴禮; 현 유천의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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