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달은 새벽 두 시의 감나무를 데리고(강현국 지음/천년의 시작 펴냄)

입력 2011-05-26 09:50:00

"난 유배된 추사'''내 詩에는 적막과 공허만 가득"

대구교육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강현국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달은 새벽 두 시의 감나무를 데리고'를 펴냈다.

2004년 '고요의 남쪽'을 출간한 이래 7년 만으로, 이번에 묶은 작품집으로 '세한도' 연작이다. '세한도' 연작이란 시인이 유배된 추사 김정희를 자신의 페르소나로 인정하고 있다는 말이다. 유배된 자는 고독하며, 허무에 빠지는 것 말고 딱히 할 일이 없을 것이다. 실제로 유배된 자는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 시집에 드러나는 시인 강현국의 심리는 유배되어 고립된, 그래서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는 사람에 다름 아니다. 작품마다 공허와 적막이 깊게 배어 있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남으로 창을 넓게 내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겨울나무 가지들이 쭉-쭉- 하늘 높이 뒷굽을 드는 동안 까치들이 깍, 깍, 깍, 운다. (중략) 어쩌다가 옛집을 헐고 새집을 지었다. 어제는 하루 종일 눈이 내렸다. 어차피 폭설이었다.' -남으로 창을 넓게 내었다- 중에서.

폭설 속에 집 한 채가 있다. 그 집은 햇볕 잘 드는 남으로 창을 넓게 냈다. 그럼에도 이 시작품에서 평화롭고 따뜻한 한 끼 식사를 연상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을까(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을까)' 라고 묻고 '어차피 폭설이었다'고 스스로 답함으로써, 애초에 이 지경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자조한다.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저렇게 해도 안 되고, 결국 요모양이 되기로 돼 있었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러실 겁니다 형님은. 누이의 죽음을 제가 시외전화로 알렸을 때 형님은 첫마디가 그럼 어쩌지? 였습니다. (중략) 형님이야 어허- 밖에 무슨 계략이 있겠습니까' -편지- 중에서.

문학평론가 박상수는 강현국 시인의 이번 시집에 대해 "공허와 적막은 보이지 않는, 그러나 너무나 선명한 거푸집이다. 그가 세상에 없는 아버지를 부를 때, 백내장 수술을 마친 어머니가 '내 손이 이렇게 쭈글쭈글한 줄 몰랐구나' 라고 말할 때의 실체 역시 공허와 적막이다"고 비평했다. 103쪽, 8천원.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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