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진실게임

입력 2011-05-25 10:58:47

지금까지도 미국 내에서 소련 간첩인지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인물의 하나가 재무부 고위 관료였던 해리 덱스터 화이트이다. 2차대전이 끝나갈 무렵 미국과 소련은 독일 점령 이후 연합군이 현지에서 화폐로 쓸 군표(軍票)를 인쇄하기로 했다. 이때 화이트는 소련의 인쇄술이 조악하다는 점을 감안해 자국의 군표 원판을 빌려줬다. 소련은 이것으로 닥치는 대로 군표를 찍어 사병들에게 지급했다. 이로 인해 미국 정부가 입은 피해는 2억 5천만 달러나 됐다. 나중에 이 사실이 밝혀지자 그는 선의의 실수라고 해명했으나 재무부 고위 관료가 이런 실수를 했다는 것은 누가 봐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화이트가 의심을 받게 된 이유는 이것 말고도 많았다. 그 중 하나가 1943년 장제스가 마오쩌둥과 싸우고 있을 때 그를 돕기 위해 미국 정부가 지원하려던 2억 달러를 화이트가 뚜렷한 이유 없이 집행하지 않았던 일이다. 이는 미국 보수 진영에는 고의적인 태업으로 비쳐졌다. 1949년 중국의 공산화는 이런 의심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한사코 부인했으나 미국과 영국 첩보 기관의 소련 암호문 해독 작전인 '베노나 프로젝트' 문서가 공개되면서 의혹은 확증으로 굳어진다. 이 문서의 결론은 화이트가 '리처드'(Richard)나 '주리스트'(Jurist)라는 암호명을 쓰는 소련 정보원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화이트는 소련과 관계 개선은 전쟁을 종식시키려던 루스벨트 대통령의 외교 노선이었고 소련과 잘 지내는 것이 자신의 소신이라고 해명했으나 의혹을 불식시키기에는 부족했다. 또 자신이 만난 사람이 소련 스파이인 것도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지만 입증할 만한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이 같은 진실게임은 그의 죽음과 함께 영원히 풀리지 않은 채 남았다.

1970년대에 좌익 이론가로 활동했던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가 60, 70년대의 주요 공안 사건이었던 1차 인혁당(1964), 통혁당(1968), 남민전(1979) 사건은 용공 조작이 아닌 실제 공산혁명운동이라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진보 측에서는 매카시즘의 부활이라고 비판하겠지만 안 교수가 당시 남한 내 재야 운동가 그룹의 사정에 밝았다는 점에 비춰 진실이 아니라고 단정하기도 어려운 듯하다. 이들 사건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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